매일신문

현장파일 이곳!-'대구 달리기 코스'신천 둔치

지난 10일 오후 7시, 대구 중동교 밑 신천 둔치. 땅거미가 내려앉으면서 슬금슬금 어둠이 밀려드는 시각이다. 가로등이 하나 둘 불을 밝히며 둔치의 어둑함을 걷어낸다. 시원한 강바람이 불자, 둔치로 나온 인근 주민들과 아이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주민들 사이로 한 무리의 남자들이 모여든다. 아래 위 유니폼을 갖춰 입은 사람이 서너명, 나머지는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다.

신천 둔치를 무대로 마라톤을 즐기는 마라톤족(族)이다. 이날 모인 마라톤 동우회는 '계성 67 마사모(마라톤을 사랑하는 모임)'. 계성고교 67회 동기들끼리 결성한 마라톤 모임이다. '계성 67 마사모'는 결성된 지 1년 됐다. 10㎞와 하프 마라톤 대회 참가자는 있지만 아직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회원은 없다. 마라톤 동호회 중에서도 풋내기 모임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상관 없다. 그냥 좋아서 뛰는 거니까. '계성 67 마사모' 회장 유찬훈(41·파티마병원 정형외과 과장)씨는 "지난해 9월 친구 3명이 모여 마라톤 모임을 시작했다"며 "1년새 13명으로 불어났다"고 소개했다. 의사가 4명으로 가장 많고 자영업자, 벤처사업자, 판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친구들이 모였다.

이들은 1주일에 2번 마라톤 모임을 갖는다. 화요일은 전원 신천 둔치로 모이고 금요일엔 희망자만 참석한다. 회장 유찬훈씨는 "금요일엔 저녁 약속이 많아 자유 참석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금요일 모임 때는 신천 둔치 외 대구월드컵경기장, 봉무레포츠 공원, 두류공원 등지로 마라톤 장소를 바꾼다. 이날 모인 사람은 9명. 4명이 불참했다.

신천 둔치에서 마라톤 모임을 갖는 동호회는 이들 외에도 셀 수 없이 많다. 대구마라톤클럽을 비롯 경북대·법원·대구시청·경북도청·영남대병원팀 등 많은 마라톤 동호회가 신천 둔치에서 마라톤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저녁에도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 옆으로 10여명이 무리지어 뛰었다.

신천 둔치가 대구지역 마라톤 동호회의 '메카'인 셈이다. 그렇다면 지역의 마라톤 인구는 얼마나 될까? 정확히 어림잡을 수 없다는 게 정답이다. 마라톤 동호회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신천 둔치엔 나홀로 뛰거나 걷는 사람이 꽤 많았다.

'계성 67 마사모' 회원들은 대개 중동교를 출발, 용두교를 돌아 칠성교까지 신천 둔치를 10~15㎞ 정도 뛴다. 준비운동과 뛰는 시간을 합쳐 보통 1시간에서 1시간 30분 가량 걸린다. 이들이 단체로 첫 참가한 마라톤 대회는 지난 4월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구마라톤대회. 당시 10㎞ 코스를 완주했다.

오는 11월 영남마라톤 대회에선 하프코스에 단체로 도전할 계획이다. 이들의 현재 10㎞ 주파 시간은 40~50분대. 대부분 선수출신인 10㎞ 단축마라톤 우승자들의 기록 32~33분대와는 물론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기록단축을 확신한다. 1시간 30분대에 20㎞ 주파가 단기 목표다. 벤처회사 넷게이츠를 경영하는 회원 김상학씨는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30분대에 주파하고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참석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이들이 마라톤에 빠진 이유는 무얼까? 물론 건강 때문이다. '계성 67 마사모' 총무 정원표씨는 '건강하게 오래 살자'는 게 모임의 모토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99년 한 신문사 주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뒤 16차례나 각종 대회에 출전하며 홀로 마라톤을 즐기다 동기회 마라톤 모임에 가세했다. 유 회장은 "담배를 끊으려면 마라톤을 시작하라"고 권했다. 마라톤이 많은 폐활량을 요구해 금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마라톤 모임에 참석한 회원 대부분이 담배를 끊었다. 회원 김상학씨도 마라톤 예찬론을 폈다. "사업상 술자리가 잦습니다. 그러나 마라톤을 시작한 뒤 술을 자제하게 됐어요. 과음할 경우 마라톤 모임에서 낙오할까봐 걱정되거든요".

그는 이어 "부인들도 가끔 모임에 나와 마라톤에 참가하면서 부부금실도 좋아졌다"면서 "부부관계가 나쁜 사람은 마라톤을 시작하라"며 웃었다. 유찬훈 회장은 "마라톤은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이라며 "평생 즐기며 뛰겠다"고 말했다.

조영창기자 cyc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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