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에서-마지막 고립 김천 수도리

태풍 '루사'가 남긴 상처는 예상 외로 깊었다. 태풍이 몰아친지 10여일이 지났지만 김천 증산면 수도리 30여가구는 아직도 외부로부터 고립돼 있다.

그나마 국도는 차량 통행이 가능하지만 증산면 소재지에서 수도리까지 이르는 용소골 계곡도로는 여전히 불통 상태다.

외부와 연결되는 유일한 콘크리트 계곡도로는 마치 계란 껍질처럼 잘게 부서졌고, 일부 구간에는 아예 도로가 있었다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됐다.

면소재지에서 수도리까지는 걸어서 3시간을 가야 한다.구호품.가축사료 등은 헬기를 통해 공수했지만 문제는 수도리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고랭지 배추.

도회지에서는 채소값이 금값으로 치솟았지만 수도리 주민들에게는 먼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흙더미에 쓸려간 배추밭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도로가 끊겨 그나마 남아있는 배추를 제때 출하할 수 없는 답답함도 적잖은 고통이다.

"이번 주가 고비입니다. 어떻게든 주말에는 배추를 실어내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면 그냥 썩고 맙니다. 농사 지을 땅이 좁은 이곳에서는 고랭지 채소가 유일한 생계 수단인데 채소값이 올랐다는데도 출하를 못하니 답답하죠". 마을주민 서운교(41)씨는 복구현장과 마을 사이를 하루에도 몇번씩 오가며 배추 출하일을 기다리고 있다.

태풍이 그친 직후에는 아예 엄두조차 낼 수 없을 것같던 복구작업이 조금씩이나마 진척되고 있다. 2군사령부 1117야공단 공병부대가 투입된 덕분. 이 부대는 김해 한림면에서 복구작업을 마치자마자 이튿날 증산면으로 출동했다. 현재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굴삭기 6대, 덤프트럭 11대를 동원해 도로를 복구하고 있다.

말이 복구지 사실상 도로를 새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식사시간을 빼고는 잠시도 쉬지않고 작업을 하고 있지만 하루에 복구할 수 있는 구간은 100여m 남짓. 깊이 10m에 이르는 계곡 옆에 도로를 새로 뚫는 난공사이다 보니 작업은 더딜 수밖에 없다.

작업을 현장지휘하는 한홍기 중령은 "주민 생계가 걸린 일인만큼 어떻게든 주말까지 복구를 마치겠다"며 "2군사령부도 수도리 고립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가능한 모든 장비를 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수도리에는 이장 윤기열씨 집에 연결된 비상전화 한대가 유일한 통신수단이다. 전기공급도 중단돼 비상발전기를 헬기로 공수해 마을 한가운데 설치, 간신히 불을 밝히고 있다.

지형이 변해버릴 만큼 거센 물살이 온마을을 휩쓸었지만 증산면에는 다행히 사상자가 없다. 태풍 대비 밤샘을 하던 면사무소 직원들이 위험지역 주민들을 긴급대피시킨 덕분.

면사무소 2층으로 주민 대피를 마친 뒤 1시간만에 모든 통신이 두절됐다."지금도 아찔합니다. 원황점리에서는 집이 부서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마을이 없어졌어요. 조금만 늦었으면 주민 30여명이 몰살당할 뻔 했죠. 그나마 재산피해에 그친게 다행입니다". 열흘 넘게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윤달호 증산면장의 말이다.

강석옥.김수용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