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사랑의 표현

내가 볼 때마다 넋을 잃는 신용카드 광고가 있다. '사랑은 표현할 때 더 잘 전해진다'는 속삭임으로 시작되는 이 광고에서는 미녀 배우가 화려한 유람선상에서 남편과 조깅도 하고 잠자리 날개 같은 드레스에 파묻혀 우아하게 춤도 추면서 온 세상이 내 것인 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

한마디로 남편이 보여주는 사랑 앞에 환하게 빛나는 아내의 모습이다. 세상 모든 남편들이 자신의 아내 사랑을 신용카드 팍팍 긁으면서 보여줄 필요는 없지만 표현할 때 더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라는 말에는 열 번 백 번 동감이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 친구가 대대손손 경상도에서 살아온 남자와 결혼했다. 아직 신혼이던 시절 둘이서 TV 드라마를 보는데 극중에서 피곤한 아내를 위해 남편이 설거지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자기 남편도 동의할 거라 철석같이 믿으며 "정말 너무 보기 좋다 그치?" 라고 물었던 그 친구는 날벼락 같은 대답을 들었다며 울먹였다 "지금 제 정신이가? 테레비니까 그렇지 실제 생활에서 저러고 사는 부부가 어디 있단 말이고?" 너무도 확신에 찬 남편의 말에 반박할 힘도 잃었다는 친구는 재미없어 어떻게 사냐고 땅이 꺼지게 한숨이었다.

굳이 무뚝뚝하다고 소문난 경상도 남자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내에게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는 것을 사나이 체면에 구김살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고 속내를 드러내 보이면 아내와 자식들 앞에서 왠지 권위가 서지 않고 존경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고 물정 모르는 기우이다. 나를 챙겨주고, 격려해주며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존경심이 우러나고 받은 것보다 몇 배로 더 잘해주려는 마음이 생기는 건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지상정이다.

식탁에서 제일 맛난 반찬을 슬쩍 아내 앞으로 밀어놓는 남편, 추석 명절 당신이 있어야 집안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과장 좀 보태서 너스레 떠는 남편을 품위 없다고 생각할 아내는 아무 데도 없다.

사랑을 표현하는데 지독히 인색한 남편 앞에서 낙담하는 아내들은 사랑의 표현을 밖으로부터 찾지 말고 자기 스스로에게 표현해보자. 스스로 자신을 위해주고 때론 만사 제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우선 순위로 삼을 때 맛보는 행복과 만족감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눈 질끈 감고 자신에게 선물도 사주고 내가 먹고 싶은 반찬으로 장바구니를 채워도 보자. 장담하는데 하루하루가 훨씬 더 즐거울 거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줄 아는 법이다.

양정혜 계명대교수·광고홍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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