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시니어교육 강사 최한현시의-주차관리든 주유원이든 일단 시작

최한현(73·대구시 동구 입석동) 할아버지는 같은 또래 노인들로부터 '선생님'으로 불린다. 봉급쟁이 생활, 그리고 퇴직후엔 사업가였던 최씨. 그의 평생 이력에 선생님이란 단어는 들어가 있지 않지만 교사를 역임한 할아버지들도 최씨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잊지 않는다.

최씨는 보건복지부 지정 노인자활후견기관인 대구시니어클럽의 시니어 주유원 교육프로그램 강사다.지난달 시니어클럽에서 노인 주유원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한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내가 강사를 해보겠다"고 전화를 걸었다.지난 달 중순 첫 강의를 시작한 뒤 12명의 주유원 희망 노인들을 교육시켜 이 가운데 7명을 취업시켰다.

짧은 교육기간에 꼭 필요한 것만 가르쳐주고 일손이 부족한 주유소까지 꿰뚫고 있으니 취업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나이가 들어도 점점 새로워져야해. 뭔가 해야 한다는 거지. 가만 있으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셈이야.참 좋은 세상이잖아. 노인들도 찾아보면 할 일이 많아". 최씨는 항상 움직여야 사는 재미도 느낀다고 했다.

최씨는 33년간 석유판매업을 했다. 주유원 교육프로그램 강사로는 이만한 강사가 없는 셈이다. 워낙 활동이 왕성하다보니 석유판매업을 할 때 대한주유소협회 대구지회장(1988∼1991)도 역임했다. 많은 사람들이 최씨를 석유판매업계의 마당발이라고 부른다.

최씨는 주유원이 고령자들에게 적합한 직종이라고 했다. 쉽게 업무를 습득할 수 있는 데다 그리 큰 노동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비스업종의 인력난으로 적지 않은 주유소들이 인력을 구하지 못하고 있어노인들을 필요로하는 주유소가 점점 늘고 있다.

최씨는 주유원 교육 프로그램 강의가 없는 시간엔 대구시내 주유소를 다니며 노인 주유원에 대해 홍보활동을 벌인다.젊은 사람들은 빼먹는 날이 많은데 노인들은 정말 성실하다고 노인들의 장점을 늘어놓는다.노인들에 대한 취업교육뿐만 아니라 최씨는 젊은 사람들을 상대로 한 창업교육 등도 기회가 닿으면 할 생각이다. 50년 넘게 사업현장에서 익힌 각종 지식을 젊은이들에게 물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최씨는 지난 98년 주유소를 아들에게 물려준 뒤 젊은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노동청이 실시하는 실업자 성취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젊은 실업자들의 고민은 무엇이고 노동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서였다."늙은 사람도 젊은 사람도 마찬가지야. 하고 싶을 때는 달려드는게 중요해. 나는 월급쟁이 생활을 하다가 한순간에 사표를 던졌어. 지금도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대번에 전화하고 그 일에 착수해요. 용기를 잃지 않아야돼. 용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거야".

최씨는 재력가다. 사업을 하면서 웬만한 봉급쟁이 수십명이 평생 모아도 이루지 못할 돈을 벌었다. 하지만 최씨는 있는 돈을 갖고 세월 보내는데 만족하지 못한다. 뭔가를 끊임없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 "어떤 할아버지는 주유원이 부끄럽다고 얘기해. 부끄러운게 어딨어. 그런거 생각하기 시작하면 세상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내가 30여년전에 어떤 사무실에 기름 넣어주다가 그 사무실 임원하고 눈이 부딪쳤어. 그런데 그 임원이 자세히 쳐다보니 내 동기야. 보통 사람 같으면 부끄러웠겠지. 나도 그때는 그랬어. 그렇다고 그 사무실에 안 갈 순 없었지. 더 열심히 갔지. 고객은 더욱 많아졌고 돈을 너무 많이 벌어 밤새도록 돈을 센 날도 많았어. 그 때 부끄러워 그 친구 사무실을피했더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거야".

최씨는 7순 노인이지만 건강도 웬만한 젊은 사람 못지 않다. 일하니까 늙지 않는 다는 것이다."요즘도 하루 8km 정도는 걸어요. 여기저기 다니다보면 많이 걷게되지. 등산을 가도 체력부담은 별로 없어".최씨는 노인들이 재미있는 노후를 보내려면 과거를 버려야 한다고 했다. 사장님으로 퇴직한 사람이 '내가 이래뵈도 사장이었는데'라는 생각을 하다보면 퇴직후 생활을 망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인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우리나라 직업문화의 후진성에도 기인해요. 직업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하거든. 나는 만나는 노인들에게 주저 없이 주차관리원도 좋고 주유원도 좋으니 일단 지금부터 시작하라고 합니다. 내가 하니까 좋더라구요. 일하는노인들은 일하는 즐거움을 이웃의 노인들에게 전하고 삽시다. 그리고 좋은 일자리 있으면 좀 구해주고요". 최씨는 시니어클럽에 건의, 시니어 주유원 사업단을 확대해 노인 자활 공동체를 구성하는 방법으로 노인 인력풀을 만들어갈 예정이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