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영화-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장선우 감독, 성냥파는 TTL소녀가 되고 싶은 거요?"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하성.소)'(감독 장선우)이 마침내 13일 우리곁에 재림했다.

순 제작비 92억원, 총 제작비 110억원, 제작기간 4년의 성.소는 하반기 한국영화 의 '기대작'으로 일찌감치 영화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재미와 흥행이 보장되 는 기대작이라기보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영화일까 하는 기대에서.

11일 오전 9시 한일극장에서는 성.소 대구시사회가 열렸다. 시사회에서 본 성.소는 오락영화도 아니고, 키취 취향의 독립영화도 아닌, 액션영 화의 외피를 둘러쓰고 선문답이 오가는, 완벽한 장선우식 영화였다.

시사회장에서 만난 제작자 유인택 (주)기획시대 대표(47)도 "오락영화 만들겠다고 (제작사를) 안심시켜 놓고는 결국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었다. 이런 사고도 이번 한 번으로 끝내야 한다"며 속 쓰린(?) 웃음을 지었다.

추운 겨울 도시의 거리(눈은 뻔히 보이는 CG로 처리됐다), 이난영의 간지러운 '목 포의 눈물'이 흐르는 가운데, 성냥 대신 라이터를 손에 든 소녀가 라이터를 팔러 다닌다. 사람들은 그러나, "먹는 장사를 해보렴" "추우면 라이터 가스를 마시렴. 질 좋은 부탄가스지"라며 외면하고, 소녀는 라이터 가스에 취해 행복한 죽음을 맞 는다.

오프닝에서부터 성.소가 한국 상업영화 사상 가장 희안하면서 돈을 많이 쏟아부은 영화란 사실이 절실히 와 닿는다.

게임에 미쳐 사는 자장면 배달부 '주'(김현성 분)는 오락실 아가씨 '희미'(임은경 분)를 짝사랑하고 있다. 어느날 희미를 꼭 닮은 성냥팔이 소녀로부터 라이터를 산 주는 라이터에 새겨진 번호로 전화를 걸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접속하시 겠습니까?'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성냥팔이 소녀를 구하고, 그녀의 사랑을 얻어라". 스테이지 1, 2, 3로 진행되는 이 게임(가상현실)에 접속한 주는 '동화대로 얼어죽게' 만드는 대신 그녀의 사랑 을 얻기 위해 분투한다.

이때부터 영화는 마치 게임장면처럼 진행된다. 화면이 게 임처럼 분할되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려면 'START AGAIN Y/N?'란 말이 뜬다. 지능을 지닌 (게임)시스템은 게임접속자들을 방해하고, 시스템에 지배권을 빼앗겨 버린 게임개발자 '추풍낙엽'(명계남 분)은 주에게 무기밀매업자와 레즈비언 여전 사 '라라'(진싱 분)를 붙여준다.

스테이지2. 주는 바이러스로 인식돼 시스템의 처결대상이 되고, 성.소는 폭력적으 로 변해 그녀를 외면하던 인간들을 총으로 갈겨버린다. (원생들을 착취하는 고아 원장을 처단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키취적인 화면이어서 어리둥절하다). 성.소가 살인을 저지르며 시내를 활보하자 시스템의 추격을 받고, 끝내 시스템에 회수돼 기억이 삭제되고 재프로그램된다.

스테이지 3. 성.소를 찾아 나선 주는 아찔한 와이어액션과 엄청난 파괴력의 비밀 무기로 군대와 전투를 벌이며 시스템의 중앙에 다다른다. 그리고 한 방울의 눈물 로 성.소의 잃어버린 기억을 돌려놓는다.

영화 성.소는 화약고처럼 논쟁의 여지를 안고있다. 성.소가 만나는 장자의 '호접 몽'을 연상시키는 노란나비의 실체는 무엇인가? 노란 나비를 따라 바다로 뛰어든 성.소가 주와 함께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 문득 깨달음처럼 들려오는 '금강경'과 목탁소리는 또 무슨 의미인가?

성.소가 나오기전 이런 우려가 있었다. '충무로가 장선우식 선문답에 농락당하는 것 아닌가' 하는. 시사회장에서 제작사측도 "우리가 노하우가 없었다. 절반 정도 제작비만 해도 됐었는데…"하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영화 성.소가 제작비에 버금가는 흥행을 거둘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독립영 화적 감성이 밴 상업영화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그러면서도 '성냥파는 TTL소녀같 은' '어중간한' 느낌만 지루하지 않게 남겼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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