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상희칼럼-성당못과 연꽃

대구시의 변두리에는 1970년대까지 여러개의 저수지가 있었다. 그 중에는 아주 옛날에 조성된 것도 있었다. 조선조 세종 14년경까지의 상태를 전하고 있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대구관내의 저수지로 성당(聖堂).불상(佛上).둔동(屯洞).부(釜)의 네곳이 수록되어 있고 그 뒤 문종.단종.세종은 거쳐 예종 원년에 편찬된 '경상도속지리지'(慶尙道續地理志)에는 위의 네곳 이외에 18개소의 저수지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그 중에도 성당저수지는 고려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몽리면적이 넓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워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대구시내의 많은 저수지가 시가지의 확산과 함께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기능이 상실되면서 대부분 매립되어 택지로 변경되었지만 성당못은 그 규모가 다소 축소되었을 뿐 두류공원의 일부분으로 편입되어 지금도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성당못이 유명했던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단순히 그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웠다는 것뿐만 아니라 저수지 안에 연이 자라고 있어 여름철이 되면 연꽃이 피어 장관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조 세종에서 성종때까지 5대의 임금을 섬기면서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또 많은 저술을 남긴 서거정(徐巨正, 1420~1488)은 대구관내의 아름다운 경관 가운데 열 곳을 선정하여 시를 읊었는데 그의 문집인 '사가집'(四佳集)에 실려있는 '대구십영'이 그것이다.

이 열 곳의 경관에는 '성당못의 연꽃'(南沼荷花)이 들어 있다.서거정은 자연과 나무와 꽃을 몹시 좋아했다. 그리고 그의 뛰어난 문재와 풍부한 시취로 산천.명승.고적.초목 등을 대상으로 많은 시를 읊었다. 그는 꽃 가운데도 특히 매화와 함께 연꽃을 사랑하여 30여수의 연꽃시를 남기고 있는데 그 중에도 연꽃이 피어있는 고향 성당못의 정경을 시로 읊으면서 극찬을 했던 것이다.

성당못에도 서거정 이후에도 계속 연이 자라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이 저수지 바로 상류지점에 도축장이 건립되고 주변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각종 폐수가 유입되어 물에서는 심한 악취가 풍기고 주변에는 쓰레기가 버려져 농업용수의 기능뿐만 아니라 시민이 산책을 하는 수변공간으로서의 기능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물 속에는 오수에서도 자랄 수 있는 몇가지의 수초만이 무성하고 연은 자연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1980년대 초에 두류공원을 조성하면서 성당못은 다시 정비되기 시작했다. 오염물질에 찌든 수면 밑의 흙을 교체하여 맑은 물을 유입시키고 주변에는 나무를 심어 녹지를 조성하였다. 못 가운데는 선경을 상징하는 섬을 만들고 그 섬에는 정자를 세웠다. 이름하여 '부용정'(芙蓉亭)이라 했다.

정자 이름을 부용정이라고 한 데는 전래되어온 어떤 연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 세워질 정자를 어떤 모양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검토한 결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아한 모습의 정자로 알려져 있는 서울 창덕궁내의 부용정이 좋겠다는 결론에 따라 그 부요정의 건축물을 실측하여 설계도를 복원한 뒤 이를 토대로 다시 설계를 하여 세운 것인데 창덕군의 부용정과 같다하여 그만 부용정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의 '부용'이란 말은 다름 아닌 연꽃의 별명이다. 그러기에 부용정이란 이름의 정자가 세워져 있는 연못에는 예외없이 연이 심겨 있다. 창덕궁내의 부용정이 그렇고 황해도 해주의 도청 앞에 있는 부용당이 그러하다. 연꽃이 있어 부용정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고 또 연꽃이 있어야만 그 이름이 어울리는 것이다.

성당못의 정자에 부용정이란 현판을 달 때는 오래지 않아 그 정자에서 연꽃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리하여 한때 정자 주변에 연을 심으려고 시도했던 모양이다.

여름 아침 동쪽 하늘이 동틀 무렵 물 위에서 꽃잎을 펴기 시작하는 수많은 연꽃송이…. 그 청초하고 영롱한 모습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신비로운 기운을 느끼게 한다.

여름철의 대구는 너무 무덥다. 연못에 아름답게 피어난 연꽃의 풍정은 여름의 무더움과 싸우는 대구시민들의 마음에 조금이니마 위안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 그래서 서거정이 읊은 '남소하화'의 정경을 다시 복원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전대구시장 영광학원 이사장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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