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너무 과음했나. 아침 일찍 꿀물 타주던 마누라 생각이 난다. 이제 6년. 스스로 지쳐 간다. 기러기 아빠는 오늘 아침도 가족 사진 보면서 쓰린 배를 움켜잡고 출근한다".
아이와 아내를 해외에 보내고 '나 홀로 집에' 신세가 된 한 가장의 일기 한 토막이다. 그런 와중의 한 어린이 마음도 읽어보자. "엄마가 싫어요. 엄마를 죽이는 꿈을 꿀 정도입니다. 엄마가 날 이렇게 괴롭히는데 아버지는 모른 척해요. 아버지도 미워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사회가 빚고 있는 새 풍속도이다.
▲온 가족이 힘들어 하면서도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어떤 가장은 '가족과 떨어져 사는 건 안타까운 일이나 우리나라에서 자녀 교육을 계속 시켜 실패할 경우 우리 가족은 훨씬 더 불행해질 것'이라고 했다지만, 이 땅의 교육에는 진정 희망이 없는 것일까. 한 여론조사에서 자녀 교육을 위해서는 '기러기 아빠가 되겠다'가 3명 중 1명이었다니 기가 찰 수밖에….
▲소위 '기러기' 직장인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고 한다. 어떤 기업체는 직원의 10% 가까이 되고, 아이들만 보낸 뒤 부인이 몇 달에 한번씩 오는 '반(半)기러기'를 포함시키면 10%가 넘는 경우도 없지 않은 모양이다. 더구나 2, 3년 전만 해도 대기업체 임원이나 변호사.의사 등 전문직이 대부분이었으나 이젠 기업체의 부장.과장까지 확산되는 추세란다. 이 때문에 야간 근무, 해외 출장, 해외 근무 등 인사관리 대책을 새롭게 세우는 기업체도 있을 정도라 한다.
▲이런 '기러기 아빠'들을 이따금 모아 회식을 하며 애로를 들어주는 등 외로움을 덜어주는 배려를 하는 회사도 있는 모양이지만, 이런 추세로 이른바 '기러기 산업'마저 짭짤해진다니 세상이 달라져도 한참 달라졌음에 틀림없다. 이미 서울 역삼동.서초동.공덕동 일대에는 이들을 겨냥한 식당.세탁.파출부 사업이 성황이라 하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직장인들의 선호도가 높은 10~20평 규모의 오피스텔의 수요가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라고도 한다.
▲'산새도 슬피우는 노을진 산골에/엄마 구름 애기 구름 정답게 가는데/아빠는 어디 갔나, 어디서 살고 있나…'. 이미자씨가 불렀던 이 구성진 가요가 새삼스러운 건 감상만은 아니리라. 자식을 위해서라면 가족의 생이별도 불사하겠다는 사회 풍조가 확산되는 게 과연 자녀를 위해서도 바람직할까. 부모가 함께 살면서 자녀의 능력을 밀어주고 돌봐줘야 사회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온전하게 성장하지는 않을는지…. 경제적으론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우리나라의 교육 수준은 왜 여전히 이 지경인지, 답답할 따름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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