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때로 집이 사람을 길러내기도 한다. 하물며 수 백년 살아오면서 장손의 장손만을 대물림해 온 종가에는 자연히 가풍이 깃들게 마련. 결국 종가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다.울타리가 쳐진 문화재로서의 '박제된 종가'가 아닌 진짜 사람들의 따뜻한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종가'는 어떤 곳일까.
▲어떤 집안이 명문종가로 불릴까?
소위 명문종가로 알려진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선택받은 사람들로서의 자긍심'이다. 열일곱에 형무소에서 시아버지께 폐백을 올리고, 독립운동으로 죽은 남편의 유해를 받아들고 목소리까지 변한 며느리가 고문으로 앉은뱅이가 된 시아버지의 손이 되고, 그 며느리가 낳은 아들은 할아버지의 발이 된다. (의성 김씨 심산 김창숙 종가)
500년 넘는 사제의 정을 지금껏 훈훈하게 이어가고 있는 두 집안(서흥 김씨 한훤당 김굉필 종가와 점필재 김종직 종가), 회갑상에 축의금 대신 전국 곳곳에서 날아온 축사가 멋스러운 집안(경주 이씨 초려 이유태 종가)도 있다.명문종가의 원동력은 멋스러운 종택이 아니라, 몸에 밴 선비정신과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고자 하는 정신이다.
▲ 종가의 멋스런 생활문화
종가의 품격을 더 높이는 것은 단연 의례. 현풍 곽씨 청백리공 종가에서 우리 전통의 성인식을 볼 수 있다. 나주 임씨감무공 임탁 종가의 혼례식은 피리와 장구소리 속에 흑마타고, 꽃가마타고 치러지는 흥겨운 잔치다.종가의 의례는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종가들의 차례상은 제물을 높이 고이는 것보다 간략하지만 정성이 들어간 상차림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종부들이 정화수 한 그릇 떠 놓고 가정의 화평을 빌던 장독대는 종택의 신전이었고, 윗대 종부에서 그 다음 종부의 손으로 이어진집안의 손맛을 지켜온 보고였다.
전국 명문종가를 80여차례 방문했다는 저자는 "전통 생활이 몸에 밴 노종손들이 세상을 떠나면 종가는 아마도 문화재로만 남게 될 것"이라며 아쉬워한다.그러나 종가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500년전 예법을 지키려고만 하는 답답함'보다 '아름다운 전통을 편리하게 다듬어 다음세대로 물려주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고 있는 것이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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