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 전문계간지 '시평'에 기고한 글에서 고은 시인은 '시인이여 술을 마시자'고 일갈했다. 시가 가슴에서 터져나오지 않고 머리에서 짜여져 나오는 요즘 문단 세태에 대한 질타였다.
술을 권하지도 마시지도 않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시인이라도 술을 마시자는 시인의 장진주사(將進酒辭)는 가슴과 정으로 살아가는 인간적인 삶에의 목마름이 아닐까. 인간의 경계와 한계를 한잔 술로 넘고싶은 시인의 고뇌이자, 지루한 일상에서 일탈하고픈 술꾼의 반격일 수도 있다.
그런 고은 시인의 44년 시세계를 일별할 수 있는 시선집 '어느 바람'이 창작과 비평사에서 출간됐다. 시인의 고희(古稀)를 축하하기 위해 후배 시인인 김승희.안도현.고형렬.이시영 등이 1차 수록작을 뽑고, 평론가 백낙청이 최종 선정한 150편을 담은 선집이다.
고 시인은 최근 어느 잡지에서 "빅토르 위고.괴테.춘원 이광수 등과 비교할 때 나는 다작(多作)이 아닌 중작(中作)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의 시세계가 일일이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작품량이 풍성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번 시선집을 펼치면 이같은 그의 폭넓은 시세계가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한눈에 되돌아볼 수 있다. 탐미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초기시에서 국토와 겨레에 대한 사랑을 담은 시, 1970년대 반독재 민주화투사로서의 면모, 불교의 게송과 선시의 전통을 잇는 단시, 최근 해외여행 경험을 담은 시에 이르기 까지….
역사적인 혁명과 삶의 정분, 피안(彼岸)의 추구와 고루한 일상의 절정, 그리고 생명이 있는 도처의 황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의 문학적 고봉(高峰)이 과연 시인의 말대로 술이 내린 축복일까. 시와 술은 동격인데 요즈음은 시인들마저 술을 멀리한다는 그의 질타처럼.
이번 시선집에 수록된 작품은 발표 연대순으로 배열됐으며 '니르바나'.'사형'.'대륙' .'백두산'.'만인보' 등의 장시와 서사시는 제외됐다. 말미에 고 시인의 최근 최근 활동까지 담은 상세한 연보도 눈길을 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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