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우리옷 디자이너 문승련씨

대구시 중구 동인동에서 한복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문승련(48)씨는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자신의 재능을 이웃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한복 디자이너다.

그냥 한복이 좋아 한복 패션쇼를 빠짐없이 찾아다니다 우리 옷의 곡선미에 매료돼 한복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평범한 주부에서 디자이너로 변신한 그는 한복과 더불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중년 여성이다.

평소 아이들에게 옷을 만들어 입힐 정도로 옷 만들기를 좋아했던 그가 본격적으로 옷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9년전인 1993년 무렵. 갑작스런 암 선고로 투병하다 병세가 조금씩 호전되고 삶에 대한 의욕이 되살아나면서 가장 먼저 손에 잡은 것이 바로 한복이다.

체계적으로 한복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한 중진 디자이너의 문하생으로 입문했다. 옷 만드는 기술을 완벽하게 배워보겠다는 생각만이 머리 속에 가득했다. 제대로 잠도 자지 않고 바느질 씨름을 한 덕에 옷이 빠르게 손에 익으면서 조금씩 그의 꿈도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럴 무렵 자신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세상과 인연이 닿았다.

문씨는 자기 일보다 남 돕는 일에 앞장서는 적극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한번 시작한 일은 좀체 지칠줄 모르고 꾸준히 지속하는게 그의 장점. 병마를 이겨내고 새 삶을 살게 되면서부터는 더욱 그러했다. 부녀회장을 맡아 동네 궂은 일에는 늘 앞장 섰고, 이곳저곳 자원봉사도 마다않고 나섰다. 다시 살았다는 감사의 마음을 세상에 돌리기 위해 그는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지난 1997년 우연한 계기로 달서구 사회복지관에서 생활한복과 수의(壽衣)제작 강의를 맡으면서 그와 세상의 새로운 소통이 시작됐다. 자기만의 기술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현실에서 그는 기꺼이 자신의 노하우를 공개했다. 수강생들은 공공근로자, 생활보호대상자 등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

그들에게 무료로 한복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틀도 제대로 못다루는 이들이었지만 생계유지를 위해 한복 만드는 법을 꼭 배워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짧은 기간내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그는 강도높은 강의를 진행했다. 그의 이같은 열정 때문인지 6주 과정을 마치는 수료식 때 수강생들은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의 이웃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달서구 관내 노인들에게 생활한복을 지어주는 일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지은 한복만도 1천여벌. 또 수의도 200여벌 만들어 보냈다. 재작년에는 문하생 30여명과 함께 '셋째금 자원봉사회'를 만들어 무의탁, 무연고 홀몸노인들에게 생활한복 만들어드리기와 무료급식 활동도 시작했다.

이런 그의 활동이 널리 알려지면서 멀리 대전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청해왔다. 그곳 실직자들의 자활공동체 사업을 돕기 위해 3개월동안 매주 두차례 새벽 기차를 타기도 했다. 큰 병을 앓은 병력에다 몸을 아끼지 않고 뛰어다녀 피곤한 몸이었지만 한복을 통한 이웃 봉사를 계속해온 그에게 일이 즐겁기만 했다. 딱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그저 옷을 만들어 입힌다는 이타행(利他行)의 마음이기 때문이었다.

문씨는 만학도다. 28, 27살 두 딸에다 사위, 손주까지 본 처지지만 배움의 길에 다시 나서 올해 계명문화대 섬유패션디자인계열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전문적인 기술을 체계적으로 배워 한복의 세계화와 대중화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후진양성에 대비해 많은 배움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서다. 대학 진학을 가족들에게 밝혔을 때 반대도 많았다. 그러다 다시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하는 가족들의 우려에도 문씨는 고집을 꺽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해보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는 그의 설득에 가족들은 두말 없이 동의했다.

딸보다 어린 동급생들과 어울려 즐겁게 공부하고 있는 그는 패션디자인학과 대표로 봉사하고 있다. 고교 졸업후 30년만에 다시 시작한 학교생활이지만 그에게 수업과 학교생활은 너무나 재미 있다. 급우들과 주말MT도 다녀오고, 국토순례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시험 때는 바짝 긴장되기도 하고, 딸들이 "엄마 성적표를 보자"며 채근할 때는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결석 한번 없이 잘 적응해가고 있다고 그는 웃었다. 자원봉사와 무료강의, 학교 수업 등 바쁜 하루를 보내는 탓에 수면시간이 3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는 문씨는 조금씩 휴식도 취하면서 대학원에도 진학, 계속 공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입어서 편하고 선이 아름다운 옷을 좋아한다. 단순하면서도 생활에 편한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그는 전통에 기초해 실생활에 편리한 한복을 만드는데 신명을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한복에 대해 너무 무관심해 아쉽다는 문씨는 한복기술을 배우고 응용하려는 젊은 세대가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폐교 등을 새롭게 단장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한복과 디자인을 가르치는 학교. 그가 이루고 싶은 꿈이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