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을 하고 귀국하면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한국의 간판글씨들이 너무 크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특히 유럽에서 돌아와 보면 한국의 건물은 온통 과장된 간판과 글씨들로 뒤덮여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우리는 그런 간판문화 속에 눈이 익숙해져 살기 때문에 새삼 근본적으로 돌이켜 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서양에서는 건물이 중후하고 아름다운 데 비해 간판은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고 간단히 적고 있다. 병원이나 변호사 사무실을 포함한 대부분의 회사 사무실들은 건물 안에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나 로비에 자그마한 동판에다 가까이서 보아야만 보일 글씨로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서양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웃나라 일본에 가 보아도 우리처럼 간판 글씨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직도 백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쓰는 재래식(?) 스타일이 많이 있는가 하면, 작은 크기의 간판을 최대한 이용하여 한문, 영어로 병기(倂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하철역에 내리면 그 주변의 가로뿐만 아니라 가가호호의 번지수까지 적은 지도를 군데군데 게시해놓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의 간판문화를 보면, 특히 올림픽 개최 이후 크고 화려하게 발전했다고 볼 수 있지만, 공간을 많이 차지하면서도 실속이 없는 것 같이 생각된다. 한글로만 쓰여진 큼직한 간판은 서양인, 중국인,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불친절을 넘어 오만하게 보일 정도이다.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어디를 찾아갈 수 있을지 상상해 보라. 서울에는 아무리 여러 차례 방문해도 간판과 교통 때문에 항상 손님이 될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말한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같은 공간에 글자 크기를 줄이고 외국어와 함께 알차게 다양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허술한 실속을 눈가림하기 위해 간판만 크게 만드는 문화라면 천박해 보일 수밖에 없다.
간판의 종류와 용도도 생각해 볼 일이다. 길거리마다 웬 플래카드와 현수막들이 그렇게 많이 걸려야만 하는지 의아스럽다. 국회의원은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란 현수막을 꼭 내걸어야 하는가? 무엇을 하는 데에도 소리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플래카드로 내걸어야 할 것인가? 후진국일수록 모토가 많은 사회이다. 가끔 뉴스로 보는 북한 여기저기의 엄청난 크기의 플래카드를 보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도 문제이지 남한 사회도 외국과 비교하면 간판과 플래카드의 홍수에 젖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 자체가 정신적 공해로 우리의 육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좀 조용히 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아니하고, 여기저기서 보이는 과장된 간판들과 어디서나 들리는 소음들이 정신을 산란하게 한다. 서양의 어떤 학자는 '고독에의 권리'를 주장한 바 있다. 고독을 향유하는 것도 인간의 고귀한 기본권의 하나라고 한다면, 오늘날 우리의 시각문화, 청각문화는 너무나 심각히 기본권을 파괴하고 변질시키고 있다.
우리가 '문화국가'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런 가까운 데 있는 문제에서부터 진지하게 생각하고 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우리는 세계화와 지구촌(global village)이란 말을 많이 한다. 우리 스스로 세계 속의 일원으로 개방적으로 살려면 우리의 삶의 스타일을 그렇게 맞추고 가다듬어야 한다. 정책 당국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은 보다 세련미를 살려 삶의 스타일을 고양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일본인을 가리켜 축소지향적 민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은 우리 자신이 분수에 비해 항상 확대지향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데에 한국인의 불안한 심리와 불안정이 깃들어 있는 것 아닌가 반성해 보아야 할 일이다. 실로 동서양의 간판문화는 동서양인의 삶의 패턴을 결정지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느껴진다. 가까운 데서부터 세계화를 생각하자.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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