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디어 창-라디오의 변신-청장년 '추억'되새길 프로는…

TV가 거의 없던 70년대의 라디오를 추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닿을 수 없는 곳에 대한 묘한 울렁거림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덩치 큰 라디오 옆에서 주소를 꼼꼼히 적어 사연을 보내고 신청곡이 소개될까 맘졸이며 기다렸었다. 라디오를 매개로 선남선녀가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80년대 TV가 널리 보급되면서 라디오의 위상은 잠시 추락하는 듯했다. 90년대~2000년대는 인터넷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라디오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 기존의 매체는 그 자리를 위협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2000년대 초 라디오는 적극적으로 변화를 꾀함으로써 그 우려를 일축시켰다. 이제 라디오에 사연을 신청해놓고는녹음테이프를 꽂아놓고 애면글면 기다리던 모습은 사라졌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인터넷 홈페이지의 '라디오 다시듣기'를 이용하면몇 주 전의 방송이라도 생생하게 몇 번이고 들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라디오 보기'를 시도하는 프로그램도 생겨났다. '윤도현의 두시의 데이트'(95.3㎒, 오후2시)는매주 금요일마다 '보이는 라디오'로 프로그램을 인터넷 생중계한다. '더블 임팩트'(95.3㎒, 오후8시)는 '더블 텔레비전'이라는 이름으로 게스트들의 현란한 의상과 몸짓, 춤, 뮤직비디오를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주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먼저 일어나고 있다. 청소년이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대해 거부감이 없고 이용 정도도 높기 때문이다.

또 즉각적인 피드백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진표의 라디오 천국'(95.3㎒,밤10시)은 '꼬물꼬물'이란 꼭지에서는 흘러나오는 음악에 뒤이어 연상되는 노래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면 바로 음악을 들려준다. 이전에는 생방송 중에 가수의 앨범을 홈쇼핑 호스트가 나와 경매를 한 적도 있다. '임백천의 뮤직 쇼'(89.7㎒, 오후2시)는 '남들에게 물어봐'에서 청취자의 고민을 인터넷 게시판에서 투표를 해 네티즌들이 조언해준다.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휴대전화와의 결합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 '더블 임팩트'에서는 '더블 행운대잔치'를 매일 마련하여 사연을 보낸 청취자에게 생방송 도중 바로 전화를 걸어 방송을 듣고 있는 중이면 상품을 준다.라디오는 더이상 베일에 쌓여 있지 않다.

'최화정의 파워타임'(99.3㎒, 낮12시)의 '몰카!원해?'에서는 진행자가 스튜디오 안의모습을 찍어서 스타 게스트들의 뒷 이야기와 함께 인터넷 게시판에 바로 띄운다. '매직?뮤직!'(TBC 99.3㎒ 오후8시)은 인터넷에 접속한 청취자의 출석을 부르기도 한다. 라디오 진행자의 모습과 스튜디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에 그치던 예전에 비하면 '투명한 라디오'에 가깝다.

라디오의 이러한 변신은 매체의 다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다. 변화에 민감한 청소년들을 붙잡기 위해서는 변신을 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떠들썩하고 즉각적인 라디오를 듣다보면 예전의 라디오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30대 이상 청취자가 들을 만한 프로그램의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일대일로 대화하는 느낌으로 나지막하게 위로받던 라디오의 그 느낌은 간직해주길 바란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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