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빛과 열을 발사할 뿐 아니라 인류가 자연을 정복하고 문명사회를 연 기폭제였다. 신성시하고 의례(儀禮)의 대상으로 섬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인도.일본 등에서는 아궁이의 불씨를 집안의 성쇠와 관련해 신성시했다.
성화(聖火)는 고대 그리스 올림픽 기간 중 제우스신전에 켜진 불과 횃불경기에서 비롯됐다 한다. 성화 릴레이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히틀러의 명령으로 시작됐지만, 1950년 올림픽 헌장에 성화 규정이 명문화되면서 채화와 봉송이 주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에선 성화가 주로 마니산에서 채화돼 왔지만, 1946년 광복절 1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서울 남산.북악.안산에서 8.15 전야부터 사흘간 '봉화제전'을 가진 게 그 뿌리라 할 수 있다. 그때 단군을 봉안한 대종교 천진전에서 채화됐으며, 이를 성화 전송단 대표였던 마라톤선수 손기정씨에게 넘겨 남산의 봉화대로 전송됐고,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에 의해 점화됐다 한다.
▲지난 5일 백두산과 한라산에서 채화, 7일 임진각에서 합화된 '통일의 불'이 서울.춘천.대전 등을 거쳐 오늘(18일) 포항 호미곶에 도착, 오후 6시 이곳의 '새 천년 영원의 불'과 합화된다. 오는 29일 개막되는 제14회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의 성화를 위한 이 합화는 한민족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 대통합을 상징하며, 동.서.남.북이 하나가 되는 염원을 담은 '국민 화합의 불'을 타오르게 하는 역사적인 순간이라는 뜻 깊은 의미를 안겨 주기도 한다.
▲남쪽의 성화 불씨는 한라산 백록담에서 채화돼 제주공항과 김포공항을 거쳐 임진각으로 옮겨졌다. 같은 시각 북한의 백두산 장군봉에서도 또 하나의 불씨가 만들어졌으며, 삼지연.어랑.원산공항을 거쳐 6일 금강산 온정각에 도착, 조직위 관계자들에게 인계됐다. '새 천년 영원의 불'은 1999년 12월31일 서해 변산반도에서 지난 천년의 마지막 불씨를 채화해 2000년 1월1일 호미곶에서 새 천년 시작의 불씨와 합화, 지금까지 해맞이광장에 보존돼 왔었다.
▲한반도 최동쪽 끝인 호미곶에서 합화된 성화는 연오랑과 세오녀에게 전달돼 정순택 조직위원장에게 넘어가기까지 전국 4천300㎞를 23일간 순회한 뒤 개막일 부산에 도착하게 되는 셈이다.
특히 국내 채화와 함께 역대 최초로 43개 참가국에서도 동시에 채화, 대회 개막 5일 전까지 우리나라에 가져온 뒤 개막식날 주경기장에서 합화돼 이번 대회의 열기를 한층 고조시킬 전망이다. 아무튼 이 성화가 남.북과 동.서가 하나가 되는 것은 물론 아시아의 평화와 발전, 온 인류를 위한 신성한 빛으로 타오르기를 염원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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