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께 하는 한가위-사랑을 채운 장바구니

몸에 마비가 찾아와 거동조차 불편한 서경희(54·여)씨에게 올해 추석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명절이 됐다. 월수입이라곤 20여만원의 정부보조금이 전부인 서씨에게 TV에서만 봤던 할인점 쇼핑기회가 생긴 것.

18일 오전 서씨는 대구시 북구 칠성동 홈플러스에서 과일을 한아름 샀다. 잘익은 배와 사과, 탐스런 감. 4년전 세상을 떠난 남편이 올해만큼은 제대로 된 추석 차례상을 받게 됐다며 서씨는 모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서씨가 쇼핑에 나서게 된 것은 한 기업체와 복지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 어려운 형편의 장애노인들이 쓸쓸한 추석을 보내고 있다는 대구서구제일종합복지관의 호소에 SK텔레콤 대구지사가 후원금 150만원을 기탁, 3만원짜리 할인점상품권 50장이 50명의 노인들에게 전달됐다.

"3만원이면 한달 반찬값이에요. 너무 큰 돈을 손에 쥐어서 어떤 것을 사야할지 모르겠어요. 씨름을 하는 아들에게 고기도 사줬으면 좋겠는데…". 서씨는 이왕 할인점을 찾은 김에 평소 조금씩 모아둔 1만원짜리 2장도 챙겨왔다며 과일로 가득한 장바구니를 들어보였다.

신장암 말기 판정을 받아 병원비 대기도 힘든 김옥술(63)씨도 이 날 한꺼번에 3만원어치의 물건을 사는 '호기'를 부렸다. 하지만 김씨의 장바구니는 쇼핑을 도와주던 자원봉사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50여개의 라면이 바구니를 가득 채운 것."추석엔 부침개가 제일 먹고 싶은데 그런 음식은 먹을 형편이 안돼요. 돈이 생겼을 때 라면이라도 잔뜩 사놔야죠. 손자들 추석 선물로 양말도 샀어요".

150만원짜리 사글세방에서 집나간 두 아들이 두고 간 손자들을 홀로 키우는 김씨. 자신을 위한 물건은 단 하나도 쥐지 않은 채 "명절은 손자들에게 가장 미안한 날이었는데 올해는 선물을 마련해 달라졌다"며 즐거워했다.

이 날 행사 참여를 희망한 노인들은 200여명이지만 모두 어려운 형편이어서 복지관측이 50명을 선정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후원을 맡은 SK텔레콤 대구지사 신양우 과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에게 일방적으로 선물을 전달하는 행사가 아니라 직접 물건을 고를 수 있는 독특한 이웃돕기 행사여서 선뜻 후원에 응했다"며 "사내에서도 많은 직원들이 노인들의 휠체어 쇼핑을 돕는 자원봉사를 희망했다"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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