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때문에 가축들이 휩쓸려가고 집이 침수돼 추석명절은 아예 생각도 못했어요. 지금도 뻘을 걷어내고 간신히 살아남은 가축을 약으로 돌봐야 하는 어려운 형편이어서 추석 명절은 생각도 못했는데…".
태풍피해로 실의에 빠져 명절 분위기를 잊고 지내는 황학수(65·영양군 영양읍 동부리) 이재춘(60)씨 부부. 황씨 부부는 18일 손자 같은 고사리손들의 뜻하지않은 보은(報恩)을 접하고는 금새 눈시울을 붉혔다.
태풍 루사로 불어난 강물이 둑을 넘어 축사와 집으로 들이닥쳐 젖소와 개 등 엄청난 가축피해를 입었던 황씨 부부는 올 추석에 사용할 그릇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이날 영양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작년의 가뭄때 받았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며 용돈을 절약, 모아 온 성금 50여만원을 받아들고는 피해 복구에 턱없이 적은 돈이지만 그 속에 담긴 정성때문에 이내 그간의 시름을 잠시나마 떨칠수 있었다.황씨와 영양초교 학생들의 인연은 지난해 가뭄때 맺어졌다.
엄청난 가뭄으로 강바닥이 말라들고 급기야 식수공급마저 중단되는 바람에 영양초교에서 급식조차 못하게 되자 황씨가 물 공급을 위해 나섰던 것.
황씨는 우유를 납품하던 안동지역 유제품 업체를 찾아 설득, 유제품을 나르는 탱크로리를 이용해 매일 10여t씩의 물을 보름동안 쉬지 않고 계속 공급했고 학생들은 덕분에 급식과 식수를 해결할수 있었다.
이같은 은혜를 받은 영양초교는 황씨 할아버지가 이번에 큰 수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전교 어린이회(회장 이승민)가 나서 열흘간 모금운동을 벌인 끝에 50만7천800원을 모았다.
이날 황씨의 농장을 찾은 학생들은 아직도 곳곳에 널부러진 쓰레기와 파손된 가옥 등을 둘러 보고는 "할아버지가 꼭 기쁘게 웃으시면서 추석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했다.
어린이회장 이승민(13)군은 "작년에는 할아버지가 보내주신 물로 우리 어린이들이 모두 물걱정 없이 학교에 다닐수 있었다"며 "용돈을 절약하고 저금통을 깨기도 했으며 어떤 친구들은 부모님 일 도우기로 모은 작은 정성"이라고 했다.
하지만 황씨는 이날 고사리 손들이 직접 전달한 성금을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끝내 받지 않고 되돌려줬다.
영양초교 어린이들의 보은과 이에 대한 황씨의 또다른 보은으로 수해가 아직 가시지 않은 농장에 모처럼만에 훈훈한 웃음이 감돌았다.
영양·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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