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자충수만 두고 있으니

"천 의원이 국방장관, 국정원장을 할 때 왜 못밝혔느냐? 김대업이 같은 파렴치한 사기꾼을 수사에 가담시키고 면책시켜 줬다더라. 천 의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증인으로 나와야 할 사람이야""이회창이 병역비리나 조사하는 게 국방장관인줄 알아? 이회창이가 별 것이야? 김대업이가 어쨌단 말이냐? 너희들이 지저분하지""말조심해. 말 같지 않은 소리하지마""야~하순봉. 이회창이 대통령 될 거라고 자만하지마. 이회창이 대통령 되면 난 이민 갈거야""야~천용택. 인간말종".

지난 17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감장에서 병풍(兵風)을 둘러싼 한나라당의 하순봉 의원과 민주당 천용택 의원간에 육두문자까지 동원된 설전개요이다. 부연하면 16대 대통령선거를 불과 석달 앞둔 시점의 대한민국 정치수준과 그 기상도를 압축해 놓은 것이기도 하다. 두 국회의원의 자질은 이미 따질 가치조차 없으니 제쳐두고 우리 정치가 왜 이렇게 막가는 식으로 살벌해져 있는지 그걸 따져보고자 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회창 후보의 장남 병역면제가 합법적이었느냐 불법이었느냐는 이른바 병풍(兵風)에 있다. 이 문제는 이미 지난 대선때 거센 회오리가 되었고 결국 그로 인해 이 후보는 대선고지에서 DJ에 고배를 든 '과거사'였다. 또 당사자인이 후보 장남은 소록도에까지 가서 상당기간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사죄한 바 있다. 이쯤 되면 일단은 국민에 대한 도리는 어느 정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게 4년반이나 지난 이번 대선 막바지에 유령처럼 왜 갑자기 튀어나왔느냐에 있다.

만약 그게 문제가 있었다면 집권당인 민주당이 지난 4년반 사이에 수사를 하든 어떻게 하든 결론을 내 그 결과에 따라 처리했더라면 이 후보는 떳떳하게 재도전하거나 아니면 아예 대권의 꿈을 접었을 것이다. 만약 김대업씨의 주장대로 한인옥씨가 돈을 주고 면제시킨 게진작 드러났다면 아마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는 다른 역량있는 인물로 교체됐을 것이다.

경선을 통해 대선후보로 선출돼 한참 질주중인막판에 '다리 걸기'식으로 김대업씨라는 인물을 통해 문제제기를 하니까 '이건 공작이다'고 보는 게 한나라당의 시각이다. 그 정황증거로 '천용택 의원의 문건 시나리오'가 제시되기도 하고 문제의 인물인 김대업씨의 사기전과나 수감자로서 병무비리 수사에 동원된 '내력'까지 막 튀어나오는 판국이다.어찌됐든 이 문제는 지금 검찰에서 맞고소로 수사중이다.

그러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도리다. 더더욱 '대선'가도에 사활이 걸린 문제이고 정권이 왔다갔다하는 심각한 문제인 만큼 서로 신중하게 언행하는 게 정치도의다. 비근한 예로 DJ비자금 문제가 지난 대선 막바지에 터졌을 때도 수사를 대선 뒤로 미룬 경험을 민주당 스스로가 겪은 터이면 더욱 신중할 의무도 있다고 봐야 한다.

때마침 어느 신문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상당수'가 '병풍이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왔다는 건 일부 국민들은정치권만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방증 아닐까. 오히려 '국민경선'이란 '신선한 정치패턴'으로 대선후보를 뽑아놓고 지지율이 하락했다고 해서 당내에서 마구 흔들어대는 민주당의 내분사태를 더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성찰해 봐야 한다.

당헌당규에 따라 뽑고 경선탈락자들도 절대 승복하겠다는 그 결의는 어디에 가고 오히려 후보를 당에서 나가라거나 무효로 하자니 무슨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반노(反盧).비노(非盧).친노(親盧)로 갈라져 '정몽준 신당'과의 합당이나 이한동 후보까지 넣어 새 후보를 내야 한다면서 노무현 후보의사퇴를 압박하는 집권당의 이미지가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런 내홍을 겪는 민주당에 국민들이 다시 "집권해 주십시오" 하겠는지 심사숙고할 때이다.

'병풍'만 물고 늘어지면 만사형통이 아니라 적어도 나라를 맡아 5년간 경영해봤으면 나라 장래도 한번 생각해 볼줄 알아야 한다. 누가 집권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다음 정권을 누구가 맡든 문제가 산적한 국정을 잘 수행을 할 수 있을지 국민들 입장에선 그게 더 걱정인 것이다.

그리고 지난 4년반을 뒤돌아 보고 반성할 것은 냉철하게 해보는 게 지금 민주당이해야 할 일이다. 집권당의 '단맛'을 못잊어 억지로, 술수로 재집권하려 한다면 국민을 핫바지로 여기는 오판이다. 세가 불리하면 야당도 해야지 야당을하면 모두 죽는 것처럼 왜 위기의식을 느끼는가.

110석이 넘는 국회의석을 가진 집권당이 똘똘 뭉쳐 집권경험을 토대로 참신한 비전을 제시하면 지지율은 어떻게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까놓고 얘기해서 한나라당도 뚜렷하게 제시한 게 뭐가 있는가. 반 DJ정서에 편승한 요인이 큰데 지금 민주당의 행태는 오히려한나라당을 도와주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한번 우려먹은 '병풍'만을 '재포장'하고 있으니 국민들의 시선이 싸늘해질 수밖에 없다. 그건 이 후보의 약점이 그만큼 없다는 걸 널리 광고하는 효과만 내면서 민주당의 '정책 빈곤'을 노출하는 자충수에 다름 아니다. 680만명이 모은 수재의연금이 1천억원이라는 민심의 향배를 꿰뚫어보는 혜안이 그렇게도 없는가. 그에 화답해 예컨대 컨테이너 박스나 천막에서 지낼 수재민들의 추석을 따뜻하게 해주는 대안마련이 바로 집권 민주당 몫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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