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결혼의 전 단계인가 동거 사랑의 한 형식인가

"동거할 사람을 찾습니다".

사랑과 결혼, 순결 등이 지배적인 가족 이데올로기로 여전히 제 무게를 갖고 있는 가운데 '동거'라는 변화의 물결이 인터넷을 매개로 우리 사회에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 국내 한 일간지 여론조사에서 20대 여성 5명 중 1명이 계약결혼을 희망한다는 결과가 보여주듯 한국사회에서 동거는 더 이상 낯선 얼굴이 아님에 틀림없다.

결혼을 전제(혹은 비전제)로 한 합의적 주거 및 생활의 공유로 정의되는 동거는 90년대 이후 급부상하고 있는 남녀간 사랑의 한 형식이자 생활의 형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추세다.

현재 20, 30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동거는 과거 '미혼(未婚) 동거'와는 그 동기와 성격이 다른게 특징. 경제적 이유나 부모의 반대로 결혼을 미룬 미혼동거와 달리 친구관계나 생활비 절약을 위한 룸(하우스)메이트, 이성에 대한 호기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비혼(非婚) 동거'가 대부분이다.

한 인터넷 동거 사이트가 자체 분류한 동거 유형을 보면 △함께형-스포츠나 레저, 문화활동 등 취미를 함께 즐기는 룸메이트 △친구형-한 집에서 같이 거주하는 말벗 △알뜰형-주거공간 확보에 필요한 월세·전세 등 경제적 부담을 나누는 형 △독립형-가사일과 바깥일 등을 번갈아가며 독립생활을 유지하는 형 △살림형-바깥일과 가사일을 분담하는 형 △동료형-연구·공부·업무 등 각 분야에서 서로 도움이나 참고가 될만한 룸메이트형 등.

현재 각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검색된 동거 사이트만 해도 20여개를 넘는다. 동거를 원하는 남녀를 연결시켜주는 이 사이트들은 거의 대부분 유료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신청자의 개인 신상자료와 조건·취향 등을 바탕으로 동거인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일은 결혼정보회사와 마찬가지이지만 신청에서 최종 결정까지 대부분의 과정이 온라인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또 다른 신청자와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동거가 결정될 때까지 운영자가 중개역할을 맡는다.실제 각 사이트에는 신청인의 희망에 따라 사진까지 싣고 있어 사전판단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온라인 혹은 직접 만남을 통해 상호 합의에 따라 동거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각 사이트에 나타난 동거 희망자 가운데 남녀 비율은 대략 60대 40으로 남성이 많다. S 동거사이트가 밝힌 회원 현황에 따르면 전체 회원 8천500여명 중 남성은 62%, 여성 38%로 남초(男超)현상을 보이고 있다. 연령별로는 25~29세가 2천787명으로 가장 많고, 30~34세 2천351명, 20~25세 2천250명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 35~39세가 790명, 40~50세가 346명으로 중년층의 동거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았다.

지역별로는 서울·경기지역이 6천309명으로 전체 회원의 7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 부산·경남 671명, 대전·충청 450명, 대구·경북 436명, 광주·전남 229명의 순이었고, 해외교포도 34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여성 회원의 비율은 지역별로 차이가 많아 42%(서울강남·경기남부)에서 24%(원주·강원)의 편차를 보였다.

특히 대부분의 사이트에서는 이성 동거의 경우 동거 계약서도 작성하고 있다. 소유권과 권한의 범위, 의무조항은 물론 별도의 상호 합의에 의해 이뤄지는 동침에 관한 내용과 피임과 임신에 관한 내용, 비밀유지에 관한 내용까지 적시해 동거에 따른 분쟁을 예방하는 사전조치도 마련해두고 있다.

이처럼 동거문화가 우리사회에서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데 대해 문화평론가 김지룡씨는 저서 '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에서 동거는 결혼의 전 단계가 아니라 그 자체가 사랑의 한 형식이 되어야 한다며 "앞으로 우리 가족제도가 빠른 변화를 맞게 될 것이며 동거도 그 중 한 형태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북대 한남제 명예교수(사회학)는 "동거는 시대 변화에 따라 가족제도 자체가 다양한 유형으로 분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 현상"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 교수는 혼전 동거가 기성 세대의 시각에서는 용납하기 힘든 것이긴 하지만 전통적인 가치관과 순결관만 강조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가족제도의 연장선상에서 동거문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해 제도적으로 자리잡아갈 수 있도록 다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 사회문제연구소가 조사한 '정보사회와 남녀관계구조의 변화 연구' 보고에 따르면 10년 후 한국의 사회상 특히 남녀의 역할에 대해 '결혼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선택 개념으로 변화될 것이며 기존의 가족개념이 해체될 것'(55%)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개인주의에 입각한 계약식 이성교제관과 결혼행태가 등장할 것'(41%)이라는 전망도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동거에 대한 부정적 반응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혼전동거가 유럽 등 서구사회처럼 또 하나의 가족형태로 등장할 가능성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지적한다. 그 이유로 동거를 죄악시하는 기성세대의 인식과 '동거=불건전'이라는 우리 사회 전반의 왜곡된 시각 때문이다.

지난해 하루 평균 전국에서 135쌍의 부부가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쌍방간 합의로 재판없이 확인하는 협의이혼만도 14만5천283건에 달하는 상황에서 혼전동거는 이혼을 방지하는 대안으로 제안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칫 호기심에 치우친 나머지 또다른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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