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밀을 아십니까?"
사단법인 우리밀살리기운동 대구경북본부장 김태호(39)씨의 머리에는 온통 밀 생각뿐이다. 지난 91년 가을 전국 65개마을 25만평에 우리밀을 파종하면서 시작된 우리밀살리기운동에 참여하면서 그는 10년 가까이 우리밀을 알리고 보급하는데 앞장 서왔다.
제2의 주식으로 그 효용성이 크면서도 그동안 수입 밀가루에 밀려 푸대접 받아온 우리밀의 부활을 위해 그는 대구경북 전역을 이웃동네마냥 돌아다니면서 종자를 보급하고, 우리밀 제품 유통에 땀을 흘리고 있다.
경기도 평택이 고향인 김 본부장은 학창시절을 대구에서 보냈다. 경북대 정외과 재학시절 그는 학생운동에 적극적이었다. 졸업 무렵인 80년대 후반 시민단체의 환경운동이 태동하면서 자연스레 우리밀살리기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전공과는 전혀 엉뚱한 농업분야에 뛰어들면서 많은 고생이 뒤따랐다.
우리밀운동이 막 전개되기 시작한 90년대초 우리밀은 잊혀진 존재였다. 이미 80년대초 정부의 우리밀 수매중단으로 생산이 거의 중단된 상태였다.
농민들조차 우리 밀에 대한 인식이 낮았고, 관심조차 없었다. 그런 농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는 경북도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겨우 설득끝에 파종을 결정한 농가를 찾아다니며 종자를 보급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트럭 위에서 보내야만 했다. 재배농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탓에 더욱 힘이 들었다.
그러기를 몇년. 미국.호주산 수입밀가루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의 입맛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수입밀 운송과정에서 다량의 농약이 검출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신토불이 우리밀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바뀌었다.
수입밀가루로 만든 제품에 비해 가격이 비싸지만 우리밀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도 늘어 우리밀 국수.빵.라면.과자 등이 차례로 개발돼 시중에 선보였고, 한약재로도 밀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전국의 우리밀 재배면적이 20ha(최대 60만가마 수확)로 늘어나는 등 0.01%에 불과했던 밀 자급률이 최고 3%로 늘기도 했다.
우리밀은 영양상태를 고려해 껍질을 전혀 벗기지 않고 가공하기 때문에 식감이 다소 떨어지지만 농약이나 표백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인체 건강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김 본부장은 "제2의 주식이면서도 수입에 전량 의존하고 있어 자칫 수출국의 식량무기화라는 위기에 처할 경우 곤란을 겪을 수 있다"며 우리밀은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대안으로써 순기능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하에서 국내 밀 재배면적의 급속한 확대는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밀 재배면적을 앞으로 점차 늘려간다면 여러모로 이득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경우 밀 자급자족률이 20% 수준으로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부당국의 정책적 지원과 관심이 높은 편이라고 소개했다. 소비자들의 우리밀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우리밀 음료.튀김가루 등 젊은 층의 기호에 맞게 가공상태를 조정해 소비자 확대에 힘쓸 계획이라고 그는 밝혔다.
위기도 없지 않았다. 김 본부장은 최근 2년동안 밀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우리밀 수매기관이 지난 2000년 농협으로 이관되면서 농협측의 잘못된 재배농가관리 등 시행착오로 인해 재배면적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경북지역 주 재배지역인 성주.고령의 밀 생산량이 급감함에 따라 알곡이 소진됐고, 우리밀 제품을 취급하는 거래처가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비영리단체인 우리밀살리기운동 대구경북본부 직원들도 7명에서 3명으로 줄어드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자연히 우리밀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줄기 시작했다.
이런 우여곡절끝에 예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올해 생산량이 크게 늘어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정부가 올해부터 생산과잉 상태인 보리수매를 중단한 것을 계기로 농가에서 앞다투어 우리밀 재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 재배농가의 경우 40kg 가마당 2천원의 이득까지 볼 수 있어 농민들마다 우리밀 종자를 원하는 등 상황이 바뀌고 있다.
김 본부장은 우리밀 홍보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밀 홍보를 위해 정기적으로 초등학교 1일교사로 나가 건강식단을 홍보하고, 수확기에는 '밀서리'행사, 밀밭 그리기 사생대회 등을 꾸준히 개최, 소비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우리밀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몽활동 또한 게을리 할 수 없는 일. 능금조합처럼 안정적인 생산과 유통을 위해 파종에서부터 수매, 가공, 판매사업까지 일괄 취급하는 품목조합으로의 전환도 미룰 수 없는 현안이다.
'우리밀 파수꾼' 김태호 본부장은 우리밀이 다시 제 가치를 인정받는 때가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하며 오늘도 운전대를 잡은 손에 불끈 힘을 넣고 있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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