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오면 차가 막혀 고생하면서도 으레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은 어머니의 자궁처럼 편안함과 넉넉함의 상징이다. 많은 인구가도시로 나와 살지만 시골에 연고를 가진 사람이 아직 많기 때문에 우리에게 고향 하면 시골의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드라마에서도 일주일에 두 번 시골 고향을 만날 수 있다. MBC의 '전원일기'와 KBS '대추나무 사랑걸렸네'가 그것. 전원일기는 우리나라 TV 방송 사상 최장수 프로그램이다. 1980년 10월에 첫 방송을 시작했으니 무려 21년이 넘은 셈이다. 전원일기를 거쳐간 연출자와 작가만도 십수명에 이른다.
'대추나무…'도 1990년 9월부터 방송을 해, 녹록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추나무…'는 세번에 걸쳐 촬영 장소와 인물이 바뀌었지만 전원일기는 20년이 넘도록 같은 출연진이 등장해 시청자들 중에는 최불암과 김혜자가 진짜 부부인줄 아는 사람도 있다.
농촌 드라마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보니 일단 농촌 배경 자체가 반갑다. 하지만 두 농촌드라마에는 과연 농촌이 있을까.'대추나무…'는 배경만 농촌일 뿐이다. 단지 시골의 정서와 이웃 간에 사사건건 간섭할 수 있는 여지를 농촌에서 빌려온 것이고 나머지는 별반 다를 게 없다. 인물들 간에 티격태격하는 갈등은 그저 도시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에 굳이 농촌 드라마라고 이름 붙이기가 민망하다.
전원일기는 일단 편하다. 지혜로운 김 회장과 어진 그의 아내, 효성스런 자식들, 건강한 사고를 가진 손자들. 일요일 아침 채널을 고정하는 것은 그런 익숙함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함 뒤에 숨겨진 불편함은 어디서 오는걸까.
"농사 지어서는 빚만 늘어요. 농촌에도 일상화된 세탁기, 청소기 같은 것들은 가사 부담을 더 늘릴 뿐이에요. 쉬워졌으니까 농사일 더해라 그런 식이죠". 지난해 의성군 옥산면 한 농가의 아주머니에게서 들은 얘기다. 이것이 현재 농촌에 살고 있는 40대 여성의 현실 인식이다.
하지만 농촌 드라마의 여성들은 가사일과 농사일의 이중 부담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어떤 갈등도 60분 내에 해결되고 다시금 편안한 그 자리로 돌아온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전원일기'와 '대추나무…'는 도시민들을 위한 농촌 드라마다.
현재 농촌의 객관적 상황은 농촌에서 행복하게 살기가 힘든 조건이다.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농산물은 제값을 받지 못하고 교육, 문화적으로도 열악하다. 그런 얘기들을 드라마에 담는다면 시청자들은 불편해질 것이기 때문에 간간이 등장할 뿐이다.
일요일 아침이면 익숙하게 '전원일기'로 채널을 돌린다. 그 곳에는 도시민들이 잃어버린 공동체와 정,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원일기는 도시가 꿈꾸는 농촌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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