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전술적 측면에서 본다면 민주당의 병풍 재점화는 일단 성공작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도 병풍 하나로 한나라당의 진을 빼고 있고, 대선 길목에서 일어나는 시정(市井)의 갑론을박 또한 병풍부터 말문을 트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병역비리에 대한 반신반의(半信半疑) 여론을 조성해 놓고, 일쑤 병풍 언쟁은 '어쨌든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 모두 병역 면제인 것은 사실'로 끝나는 터이니, 민주당으로서는 여전히 수지가 맞는 장사다.
그처럼 손쉬운 셈법을 앞에 놓고, 아무리 한나라당이 '새빨간 날조'라고 길길이 뛴다 한들, 민주당이 병풍 공세를 접을 까닭은 애시당초 없는 것이다. 아마 앞으로 2개월여의 대선 가도는 더더욱 병풍 육박전으로 피칠갑을 할 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병풍이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할까. 과연 97년처럼 이 후보에게 치명타를 입힐 것인가. 아직도 검찰의 수사가 실체적 진실을 까발리지 못하고 있는 마당이지만 몇가지 관점에서 병풍의 진로와 영향을 접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5년 전 상황과의 비교다. 그 당시 이 후보는 한때 선두를 달리다 병풍을 얻어 맞는 즉시 지지율이 10% 대로 급락하고, 대선을 2개월여 앞둔 시점에서는 3위 언저리의 신세로 전락했다. 거기에는 '이인제 변수'와 당 내분이란 악재가 동반 하락작용을 했다. 그렇잖아도 대선 4수의 DJ라는 걸출한 카리스마가 버티고 있는 벅찬 상황이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병풍은 결정타였지만, 이 후보는 힘겨운 추격 끝에 DJ를 1.5%까지 따라 붙는 대선전을 펼쳤다. 대선 사상 가장 박빙의 승부(39만 표 차)였다. 이 후보 진영에서는 이인제 후보(492만표)의 표 잠식이 최대 패인이었다고 분석했고 언론도 그렇게 봤다. 말하자면 병풍 보다 이인제 변수를 더 결정적으로 평가했다.
올해는 어떤가. 무엇보다 병풍으로 인한 지지율 변화가 아직은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이 5년 전 보다 더 많은 의혹을 보태고 연일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지만 이 후보의 지지율은 계속 30% 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선 '재탕'이란 점 말고도 민주당이 병역 문제를 스스로 정치적 공방으로 이끌고 간 우(愚)를 들 수 있다.
처음부터 '명백하고 현존하는 증거'를 확보하고 어떤 시비도 따라붙지 않는 수사 분위기를 조성한 연후에 병풍의 재점화를 시도했어야 했다. 그리고 나서 한나라당의 반사적인 감정 폭발은 의연하게 외면하는 수순으로 대응해 나갔다면 병풍의 약발이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한나라당과 말꼬리 잡는 수준의 대변인 성명을 매일 쏟아내고 여기저기서 폭로전으로 나가면서 민주당 스스로 병역비리 의혹을 정치적 공방으로 만들어 놓았다.
검찰의 수사진 교체도 수사 결과의 설득력 확보 차원에서 수용하는 게 좋았을 법 했다. 지금 같은 두 당의 극한 대립 상황에서 앞으로 검찰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 놓더라도 어느 한 쪽은 틀림없이 공방 차원으로 깔아 뭉개려 들 것이란 점에서다.
그 다음은 네거티브 공세에 대한 유권자들의 수용 여부다. 5년 전 병풍으로 수세에 몰리던 신한국당은 대선 2개월을 앞둔 시점에서 DJ의 천문학적 비자금 폭로라는 최후 카드를 던지며 '선거는 끝났다'고 호언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그런 네거티브 공세를 싸늘하게 외면했다.
오히려 이 후보의 지지는 빠지고 DJ와 이인제 후보는 상승했다. 그것은 신한국당이 상대 후보에 대해 그 어떤 의혹과 흠집을 제기해도 이미 '정권교체'쪽으로 굳힌 층은 요지부동이란 뜻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완전히 5년 전과는 뒤바뀐 상황이, 다시 말해 이 후보가 정권교체를 들고 나와 민주당의 네거티브 공세를 맹비난하고 있는 공수(攻守) 전환 국면이 유권자에게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관찰해야 할 것 같다. 현재까지는 '병풍'이 '정권교체'를 압도하고 있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본다면 민주당으로서는 대선의 전 화력을 네거티브 공세에 집중하기 보다는 포지티브 전략으로 나가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다. 신장개업이든 후보 단일화이든 간에 DJ집권 5년에 대한 평가를 정면으로 받아 들이면서 '정권교체'에 대항할 구호를 창출하는 정공법으로 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번 대선은 인물 대결 차원은 넘어 선 것 같으니 말이다.
김성규(정치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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