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림이야기-권력자와 미술(8)-패거리 문화에 흔들리는 화가들

한국에서 가장 치열하고 난잡한 선거는 뭘까? 대개 대통령·국회의원 선거를 꼽겠지만 한국미술협회이사장 같은 미술단체장 선거도 그에 못지 않다. 홍익대와 비(非)홍익대 연합으로 나뉘어 각각 후보를 띄우는 것이나, 선거과정의 혼탁·불법시비, 선거후의 무효소송 등 일련의 수순까지 정치판을 능가하면 했지 절대 그 이하는 아니다.

밖에서 보면 '예술가가 웬 감투?'라고 의문을 갖기 마련이지만, 이상하게도 뭇 화가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 안달이다. 뭔가 좋은게 있는 모양인데 한 화가의 얘기를 들어보자.

"선거에 특정후보가 당선되면 미술계의 판도가 흔들릴 정도입니다. 미술인들은 우스갯 소리로 공공기관 벽에 걸려있는 그림조차 당선자 지지그룹들의 작품으로 싹 물갈이된다고 합니다. 공모전, 조형물 심사, 작품판매, 국내외 전시회 참가 등 수많은 혜택과 기회가 지지그룹에게 돌아가는게 보통이죠".

또다른 화가는 한술 더 떠 "그전만 해도 먹고 살기 막막했던 화가가 선거후에 괜찮은 수입을 올리는 작가가 됐다는 성공담이 꽤 있다"고 했다. 일부 미술인들이 그토록 문화권력에 집착하고 그것에 줄을 서는 이유를 대충 알만하다.

사실 현대미술의 대부로 불리는 박서보(홍익대 명예교수)씨도 문화권력을 앞세워 자신의 입지를 구축했다는 비판을 적지않게 받아왔다. 60년대 제도권 반대편에서 국전(國展)반대운동을 주도하다 70년대 한국미협 부이사장, 이사장을 거쳐 '박서보 사단'이라는 거대한 추종세력을 형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전 그에게 미술계의 패거리 문화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는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노력 않는 작가들의 자기변명일 뿐이야. 죽을 힘 다해 그리면 뭘 못하겠어…. (어디 홍익대 나왔다고 다 좋은 화가인가)" 세간의 비판과는 전혀 다른 답변이었다.

그가 과연 학맥·파벌 등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궁금하지만,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먼 훗날의 일이 아니겠는가.

서울 쪽은 그렇다 치고 대구는 사정이 나을까? 한 작가는 "미협회장 선거의 경우 서울에 비하면 어린아이 장난 수준"이라고 말하지만, 서울의 축소판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당할 것 같다.

젊은 작가들은 "선거때만 되면 어디론지 멀리 달아나고 싶다"고 토로할 정도로, 고쳐야 할 선거풍토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언제쯤 화가들이 선거나 패거리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작품에만 전념하는 시절이 올까.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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