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계속되는 가출을 막을 방법이 없을까요?" 중학생 딸을 둔 한 어머니의 제보로 가출 청소년들을 찾아 나섰다. 도대체 어디에서 가출 청소년을 찾을 것인가? 그러나 기우였다. 가출했거나 가출을 꿈꾸는 청소년들은 곳곳에 차고 넘쳤다.여러 번 가출 경험이 있는 중학교 3학년 최모양이 알려준 가출 청소년들의 아지트는 도심 한가운데 있었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평범한 레스토랑. 그러나 가게 안 풍경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자욱한 담배연기, 담배를 문 채 홀 안을 어슬렁거리는 앳된 10대 소녀들. 나이를 한껏 올려 잡아도 15세가 안될 성 싶었다. 대낮에도 술을 판다고 했지만 이른 시간 탓인지 술 마시는 아이들을 찾을 수는 없었다. 최양은 대구시내에만 비슷한 가게가 3, 4곳이 된다고 말했다.
"카메라 든 저 사람들 뭐야?" 아이들이 취재진을 힐끔거리며 쏟아내는 말이었다. 아이들은 불량스런 눈빛으로 취재진을 바라보았다. 좥집나간 아들이나 딸을 찾아온 아버지? 어쩌면 학교 선생? 모르지, 원조교제를 원하는 아저씨들? 아가씨들을 모집하려고 나온 술집 아저씨들?어쨌거나 왜 기분 나쁘게 사람을 째려보는 거야?' 아이들이 취재진을 쳐다보는 눈빛엔 호기심과 짜증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그냥, 심심해서요. 잔소리도 귀찮고 학교는 재미없고…". 가출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14세짜리 소녀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부모와 심각한 갈등 혹은 학교생활의 문제가 있을 것이란 취재진의 짐작은 턱없이 빗나갔다.
"우린 공부도 꽤 잘해요". 가출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성적이 결코 하위권이 아님을 강조했다. 실제로 아이들은 관심 있는 학과목을 댈 만큼학생다운 데가 있었다. 가출했다가 임신까지 한 배모양(17)의 사연은 어처구니 없었다.
"그냥 친구 따라 시내에 놀러갔는데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몇 번 놀다보니까 학교 친구들은 시시해졌어요". 배양의 가출 이유는 심심한 학교, 심심한 집, 잔소리하는 부모였다."아기 아빠가 누군지 몰라요". 배양은 뱃속 아기 아빠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른다. 대충 짐작만 할 뿐이다. 여기저기에서 이 사람 저 사람과 어울리다보니 배가 불러왔다는 것이다.
"임신 3개월 때 지우려고 했는데… 30만원 내래요. 겨우 돈 맞춰서 가니까 5개월이라 80만원 내라고 하데요". 배양이 임신 8개월이 된 과정은 너무나 간단하고 어처구니 없었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지경에 이를까.
늦게까지 친구들과 놀다가 차가 끊어지고 동성 친구 집에서 잔다. 물론 부모님께 전화를 낸다. 차츰 외박이 반복되면서 아이들은 가출한 친구를 하나 둘 알게 된다. 이 친구들은 학교친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다. 이제 집에 전화 따위는 내지 않는다. 필요할 때 몰래 집에 들어갔다가 몰래 빠져나온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의 애원과 집요한 설득에 집에서 꽤 오래 머물기도 한다. 그러나 십중팔구 또 집을 뛰쳐나온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친구의 집을 전전하거나 PC방에서 밤을 새운다. 인터넷으로 이성친구를 사귀거나 원조교제에 빠진다. 이성 친구는 확실히재미있다. 원조교제로 번 돈은 가출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가출 청소년의 22%가 성관계를 가진 경험이 있고 20%가 이성친구와 동거한 경험이 있다.그 후 주점이나 노래방·식당 등에 취직한다.
최악의 경우 인신매매 당하기도 한다. 가출 청소년들이 말하는 가출 과정이다."집안을 어지럽혀도, 좀 늦어도, 공부를 못해도 심하게 꾸짖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집을 뛰쳐나온 아이들은 부모들의 눈높이에 맞추기가 너무 힘들다고 고백한다. 잘 정돈된 집, 언제나 정숙해야 하는 학교, 공부에 대한 부담감, 부모님과 선생님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 공간이 견딜 수 없었다는 말이었다.
"부모님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비교해 화부터 내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다릅니다. 일단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화부터 내지 말고 전후좌우를 천천히 설명한 후 부모님 생각을 자세히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충분히 알아들을 능력이 있어요". 하종봉 달서구 청소년쉼터 부장은 무엇보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대구·경북지역 청소년 문제 상담소
대구광역시청소년쉼터 053)426-2275
달서구 청소년 쉼터 053)526-1318
포항 청소년 쉼터 054) 272-7179
울산광역시 청소년 쉼터 052)27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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