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이젠 家計마저 휘청거리나

경제의 기본 단위인 가계의 부실(不實)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가 금융기관에 지고 있는 부채는 지난 6월말 현재 평균 2천720만원이며 올들어서만도 380만원(16.2%)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 금융부채는 작년 봄 이후 분기마다 6~8%정도 증가세를 보여왔는데 최근들어 급격히 상승, 이런 추세라면 연내에 가구당 3천만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하니 가계부채가 총체적 경제부실로 이어질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내년도 세부담이 가구당 300만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정부 발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금융부채가 3천만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보도에 국민은 어리둥절하다. 빚으로 살림을 꾸려나갈 정도로 가계의 건전성이 허물어졌으니 도대체 이 나라 경제정책의 근간이 무엇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내수진작을 주무기로 엄청난 자금을 시중에 풀었다. 재정 팽창은 말할 것도 없고 공적자금만 156조원을 쏟아부었다. 신용사회를 정착시킨다며 신용카드 남발 정책을 펴는 바람에 국민의 소비 성향은 잔뜩 높아졌다. 부동산 투기바람이 전국을 휩쓸고 있지만 갈 데없는 단기 부동자금은 300조원을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자금 사정이 풍부한데도 가계 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투기 심리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가계 신규 대출의 56%가 주택구입에 사용됐다는 금감위의 최근 자료가 이를 입증해 준다. 금리는 낮은데 부동산 가격은 치솟으니 빚을 내서라도 부동산을 취하겠다는 발상은 당연한 것 아닌가.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손을 놓고 있었으니 우리 경제는 속골병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가계대출은 담보로 잡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은행의 부실채권으로 이어진다. 은행의 경영 압박은 다시 소비증가 억제와 경기침체의 악순환으로 연결돼 자칫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 특히 미·이라크 전쟁 임박으로 주가 폭락, 유가 인상 등 세계 경제가 불안한데 한국만 예외일 수는 없다. 대외 여건이 이렇게 불투명한 상황이라 섣불리 금리를 올리기도 힘든 실정이다.

풍부한 유동성은 경기활성화에 직접적인 효과를 주지만 '거품'으로 전락하면 일본식 '잃어버린 10년'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는 이제 투기자금 흡수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가계대출이 이제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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