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인(당시 10세)군 등 대구 성서초교생 5명이 실종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1년전인 지난 91년 3월 26일. 기초의회 의원 선거일이어서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이날 오전 8시10분쯤 이들은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동네에서 "와룡산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함께 집을 나간 뒤 실종됐다. 이런 연유로 5명의 실종 어린이들은 '개구리소년'으로 불리게 됐다.
당초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였던 실종사건은 사건발생 보름이 지나도록 해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모험을 위해 가출했다" "앵벌이 일당에 유괴당했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는 등 갖가지 설만 난무했고 실종사건은 '오리무중'으로 빠져들었다. 시민들의 제보도,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도 별다른 성과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어린이들의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한 채 아이들이 살아있다는 한가닥 희망을 안고 소형트럭에 플래카드와 대형사진을 걸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부모들은 답답한 마음에 유명 점쟁이를 찾아 다니기도 했다.
실종 한 달 후 실종된 어린이의 집으로 거액을 요구하는 협박전화가 걸려왔고 이때부터 집단 유괴·납치 가능성이 제기됐다. 경찰은 앵벌이 소행 등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벌였다. 경찰과 가족들은 섬지역인 전남 완도 등을 포함 전국을 뒤졌고 전단을 전국에 배포했다.
같은 해 5월엔 실종된 김종식(당시 9세), 조호연(12세)군을 자처하는 어린이가 "살아 있다. 깡패와 같이 있다"며 서울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서울에서 실종 어린이를 보았다는 시민들의 제보도 잇따랐다. 하지만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는 한 주부가 아들을 시켜 장난전화를 한 것으로 밝혀져 가족들에게 실망만 안겨줬다.
91년 말엔 한 여자가수가 '개구리소년'이란 음반을 내놓았다. '돌아오라 엄마품에'란 부제가 붙은 '개구리소년'은 "하늘로 솟았느냐 땅으로 꺼졌느냐/개구리 잡겠다고 웃으면서 나가더니…/돌아오라 엄마품에 애들아 어디에 갔느냐"는 애끓는 노랫말로 돼 있었다. 92년 6월엔 '돌아오라 개구리소년'이란 제목의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개구리 잡으러 간 친구들은 어디있을까'란 추리소설까지 등장했다. 실종 10개월을 넘기고도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하자 경찰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심령술사까지 동원, 개구리소년들의 행방을 찾아 나섰지만 효과가 없었다. 100여명의 점쟁이와 심령술사들이 아이들을 찾겠다고 자원해 나서기도 했다.
92년 5월엔 한 주간지가 개구리소년의 납북 가능성을 제기했다. 92년 8월에는 경북의 한 나환자촌에 개구리소년이 암매장됐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에 나섰던 기자 등 25명이 주민들에게 감금, 폭행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96년 1월에는 김모 교수가 "개구리소년들이 실종된 한 어린이의 집에서 살해돼 화장실에 암매장됐다"고 주장, 경찰이 시체발굴에 나섰으나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 주장은 실종 어린이들의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깊은 상처를 줬다.
97년 8월엔 대구고법에서 열린 민사소송에 증인으로 출두한 40대 여인이 자신이 개구리소년 살해 공범이라고 주장,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이 여인은 "남편이 매일 구타해 재판이 끝난 뒤 돌아가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털어놔 가족과 경찰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같은 해 11월엔 78년 실종된 고교생 3명이 북한에 납치된 사실이 드러나자 개구리소년들도 납북됐을 가능성이 또 다시 제기되기도 했다.
가장 최근의 개구리소년 제보로는 지난 해 7월 "91년 전남 신안군 정도섬의 염전에서 일하는 10대 소년 4, 5명을 봤다"는 것이었으나 수사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90년대 최대의 미스터리였던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온갖 해프닝과 설이 난무하며 11년넘게 미제사건으로 남아왔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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