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진정한 지방자치와 그 적들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국회의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해 지방의 공무원직장협의회와 분권운동단체는 "지자체 업무 중 국가위임사무는 10%에 불과한데도 국회가 지자체 국감에 나서는 것은 시·도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라고 비난하면서 국감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지자체의 감사 권한을 가진 지방의회는 자신의 권리를 저버리고 방관자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권력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지방자치란 가능한가 ? 다소 진부한 물음이지만, 이에 대한 답은 결코 만만치 않다. 1990년대 초 지방자치제를 어렵게 시행하면서 이 제도를 시행만 하면 곧바로 지방자치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지방자치는 제도적으로 정착되었다고 할지라도 실질적인 지방자치는 요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중앙정부가 정당한 존재이유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한 지방이 독립된 국가로 분리되지 않고서 완전한 자치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제의 시행은 분명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정책을 지역민들의 민주적 의사결정과 자발적 참여로 수행해 나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지방자치는 규범적이며 또한 현실에서도 시행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중앙정부가 가지는 권한과 재정이 지방정부로 이전되지 않고 있음은 분명 지방자치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하겠다. 따라서 중앙정부가 가지는 권한과 재정을 지방정부에 이전하라는 지방분권운동이 그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방소득세와 소비세를 설치하고 중앙정부의 위임사무를 폐지하며 중앙의 국회가 지방의 행정에 대한 감사를 폐지하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지방자치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로 중앙을 상징하는 서울과 수도권에 대한 지방의 경제적 불균등을 들 수 있다. 수도권으로 인구와 산업의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고, 이로 인해 국가의 부와 정보의 대부분이 서울을 중심으로 축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인력의 역외 유출을 막기 위해 주요 공공부문의 인재할당제를 시행하고, 서울의 중추기능을 지방으로 이전하도록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이나 요구들은 지방자치의 외적 조건들에 대한 개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나 요구는 중앙정부 또는 수도권에 대한 지방정부와 지역경제의 상대적 소외감이나 위축감의 대립적 발로가 되어서는 안된다. 만약 이러한 입장이 의미를 가지려면 중앙정부나 수도권이 가지는 물신화된 권력이나 경제적 부를 나누어 가지자고 할 것이 아니라 왜 그것이 잘못되었는가를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지방자치의 외적 조건 못지 않게 지역 내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중앙권력과 밀착된 지방 정치권력이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의 상당수가 부정부패에 연루되고 구속되는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이 어떤 의미를 가지겠는가 ?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자치란 허울에 불과하고 지방정치는 중앙 정치권력에 더욱 예속될 뿐이다.

진정한 지방자치의 실현을 저해하는 적은 사실 중앙권력과 밀착한 일부 기득권층, 그리고 이들의 부정부패와 권력 배분을 둘러싼 암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큰 문제는 일반시민들이 폐쇄적 지역정서로 인해 이러한 내부 문제를 외부로 돌려버리고 자기 스스로 교정 능력을 점차 상실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지방자치의 힘은 중앙정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민주적 참여와 개혁적 실천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일반 시민들이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지방자치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를 외부에만 돌림으로써 우리 내부의 문제를 숨기거나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중앙집권적 정치와 수도권 집중적 경제가 잘못되었다고 탓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우리 내부의 적은 무엇인가를 직시해야 한다. 지방자치란 기존의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스스로 실천 능력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최병두 대구대교수 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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