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근대 문화예술사 분단의 빈틈

해방에 이은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국토분단과 민족이산은 세월이 흐르면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아예 '타국보다 못한 관계'가 되고 말았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장이라는 양극구도는 아직도 망령이 되어 따라다니고 있다.

문화계도 예외는 아니다. 그나마 해방당시 남으로 내려오지 못했던 인사나 한국전쟁 와중에서 납북된 문화예술인의 사정은나았지만 월북한 이들은 반세기에 이르도록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금지됐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실명으로알려지기 시작하고 가끔씩 그들의 작품들이 조명을 받기도 했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문학평론가인 조영복 광운대 교수가 펴낸 '월북예술가 오래 잊혀진 그들'(돌베개 펴냄, 335쪽, 1만2천원)은 그동안 잊혀졌고, 이름이 알려지는 것조차 금기시됐던 월북예술가들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등장하는 월북예술인들은 시인 임화 백석, 소설가 한설야 이태준 박태원, 작곡가 김순남, 화가 정현웅 이쾌대 김용준, 배우 임선규 문예봉 황철 등 12명으로 교과서에 카프계열이나 월북 예술인들을 언급할 때 임x, 백x, 한xx 등으로 언급되던 이들이다.

이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공훈예술가, 인민예술가의 칭호로 영웅시됐지만 2~3명을 제외하고는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당하거나(임화) 자살하거나(김용준) 탄광촌 등에 유배돼 비참한 생을 마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 대부분 월북 이후 자료부족으로 생애가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으며 특히 숙청된 후에는 사망 때까지 10~20년간의 행적이 불투명한 것도 특징이다.지은이는 이들의 생애를 언급하면서 정치와 이념보다는 그들이 남겼던 일화와 예술세계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삶을 그리고 있다.

'나, 내일 이북간다'며 월북한 김순남이나 시인 정지용이 '소설가 이태준군, 조국의 서울로 돌아오라'는 일화에서 보여주듯 많은 월북 예술가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이 되고 만 월북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던 같지는 않다.

일제강점기 동안 이에 대한 돌파구로 당대의 지식인들이 겪어야만 했던 좌.우익문제가 이들을 월북으로 내 몬 것이고,결과적으로는 정열과 치열함, 투철한 사상과 이념을 가지고 예술활동을 벌였던 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게 한 셈이 됐다.

정지화기자 jjhw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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