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兒到處是故鄕 幾人長在客愁中 一聲喝破三千界 雪裏桃花片片紅'(사나이 이르는 곳 어디나 고향인데/ 몇사람이나 오랜 나그네로 있었던가/ 한 소리로 온 우주를 갈파하니 / 눈 속에 복사꽃 하늘하늘 붉어라).어려운 한시를 짓지는 못해도, 마음에 와닿는 옛 시 한 수쯤 읊조릴 수 있다면 술자리조차 그 격조가 다를 듯하다.
다산 정약용.매월당 김시습.만해 한용운 등 40여명의 선인들이 남긴 한시를 통해 옛 선비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로보았고,어떻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높은 정신세계에 이르게 되었는지 추적해 본다.
젊은 고전학자 김풍기가 지은 '옛 시 읽기의 즐거움'(도서출판 아침이슬)에는 가난한 살림살이 속에서도 서책을 벗삼아 천지의 이치를 깨닫고,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삶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번뇌하고 갈등했던 옛 사람들의 내면풍경이 담겨있다.
저자는 50여편의 시를 '옛 사람들이 사는 법'.'옛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옛 스님들의 깨달음' 등 3개의 주제로 나누고,그들이 살았던 시대적인 배경과 개인사는 물론 작품 탄생의 배경까지 꼼꼼하게 파헤쳐 선인들의 내면세계를 섬세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바쁜 현대인들이 옥편을 찾지 않고도 옛 시를 읽을 수 있도록 부록으로 한자의 음과 훈을 달고 한자의 딱딱한 느낌을 줄이면서 시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별색 인쇄까지 했다. 삭막한 가슴을 풋풋하게 적셔줄 옛 시 한 수. 그것은 현대인의 각박한 삶에 한 점 청량한 바람인 것을.
그렇다면 세상의 속박과 문학적 권력에서 벗어나 이토록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하도록 이끈 시적 에너지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시마(詩魔), 즉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는 시적 영감 혹은 예술적 열정이었다.
'시마'는 숙명적으로 가난과 병 그리고 술과 불우함을 동반했다. 험난한 삶 속에도 행복했던 사람들, 오직 시만을 생각하고 생애를시의 의탁했던 사람들, 오직 한 번의 절창을 위해 온힘을 몰두했던 시인들의 벗. 그것은 바로 '시마'였다.
같은 저자인 김풍기가 같은 출판사에서 동시에 내놓은 '시마, 저주받은 시인들의 벗'은 우리 고전문학사에서 면면이 이어져온 '시마'에 대한 본격 연구서이다. 시마라는 단어는 당나라 시인 백낙천이 처음 사용했는데, 저자는 이규보의 구시마문(驅詩魔文)과 최연의 축시마(逐詩魔)란 두편의 글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글들은 모두 시마의 죄상과 폐해를 일일이 열거하며 이를 쫓아내고 비방하고 있지만, 본심은 시마가 어쩔 수 없는 절친한벗임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시에 죽고 사는 시인으로서야 '시마의 죄상'이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나 '즐거운 비명'에 다름아님을 어쩌랴.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한덕수 "24일 오후 9시, 한미 2+2 통상협의…초당적 협의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