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인공동체 '그들좋은…협동조합'-일과 나눔…삶의 여유 되찾아

다음 달은 경로의 달. 그리고 다음 달 2일은 '노인의 날'이다.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은 세계적인 추세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이미 닥쳐오고 있는 상황. 노인의 날과 경로의 달이 더이상 '나'와 상관없는 얘기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최근 문을 연 노인자활후견기관인 햇빛시니어클럽(대구시 남구 이천동·053-471-8090)이 운영하고 있는 '그늘좋은 어르신 협동조합'은 노인의 달에 눈여겨볼만한 노인 문제 해결 사례다. 60세 이상의 노인들이 모여 일과 나눔의 의미를 함께 생각하는 곳. 이 곳은 3년간의 실험을 거쳐 나름대로의 성과를 던져주고 있다.

'그늘좋은 어르신 협동조합'은 '협동조합 방식'이라는 독특한 운영체계를 갖고 있다. 손이 빨라 같은 시간에 남들 보다 1.5배의 일을 하더라도, 또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일을 하더라도 같이 일을 한다는 이유로 같은 월급을 받아간다. 쇼핑백 줄을 꿰고 달력을 끼우는 등의간단한 일이 대부분. 현재 7명의 노인들이 일하면서 나누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작업 틈틈이 콩나물도 키운다. 작은 커피자판기를 운영, 서로간의 복지를 위한 공동의 비용으로 쓰기도 한다. 노인들은 점심시간이면 작업장에서 10분정도 거리의 경로식당에서 제공하는 점심식사를 하고 매주 월·목요일에는 지역의 빵집에서 전해주는 빵을 간식으로 먹기도 한다.

또 매주 수요일에는 지역의 한의사가 와서 노인들의 건강을 체크한다. 가끔은 작업장 옆 화단에 물을 주는 잠깐의 여유도 가진다. 일이 있어 좋지만 일 보다 더 큰 것들을 나누는 곳. 단순한 작업보다 작업으로 인해생기는 여유와 관계들에 더욱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많은 노인 공동작업장이 설립, 운영되지만 활성화의 길을 걷고 있지는 못하다. 노인들은 부가가치가 높은 일거리를 받을 수 없어 무엇보다 경제적 도움으로 이어지지 못하는데다 일하는 것외의 다른 즐거움을 느낄수도 없는 때문이다. 그늘좋은 협동조합은 이같은 단점을 극복하고 있다.

그늘좋은 협동조합의 시작은 지난 99년 9월이었다. 불교사회복지회가 대구시 남구 이천동의 한 단칸방에서 노인작업장을 열었던 것이다.당시 60세 이상 노인 14명이 찾아왔다.

이 곳에 온 노인들은 무료함을 달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일어나서 할 일이 없다는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노인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초기멤버로 출발, 현재 작업반장을 맡고 있는 전갑철(67)씨. 전씨는 서울에서 40년간 공무원생활을 하다 퇴직 후 대구 아들집으로 왔다. 아파트라는좁은 공간에서 며느리와 대면하며 3개월을 보냈다.

"생생한 정신에 자식이 주는 용돈 받으며 할 일 없이 있는다는 것이 몹시 힘들었다"는 전씨. 협동조합의 일과는 '살아있다'는 즐거움을 가져다준다고 전씨는 얘기한다.협동조합은 3년간의 실험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리고 노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같은 시행착오를 극복했다.대표적인 것이 운영방식. 처음엔 작업물량이 많은 사람이 작업물량만큼 돈을 가져갔다. 철저한 자본주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 잘하는 사람은 일을 더하고 일 못하는 사람은 더 못하는 현상이 계속됐다. 결국 노인들은 논의끝에 공동작업 공동분배라는 '자본주의에 반하는'결정을 내렸다.일 잘하던 노인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노인들은 정(情)의 계산방식을 택한 것이다.

분배방식을 해결해도 다툼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매일 30~40분씩 지각하는 노인들에 대한 길들이기, 기존 참여자의 신규 참여자에 대한 텃새, 그리고 사소한 말다툼. 3년여의 실험은 제2, 제3작업장 개소로 이어지고 있다. 실험이 새로운 모형을 탄생시킨 것이다.

햇빛시니어클럽 라혜영(27)팀장은 "노인들에게 일을 통해 협동의식을 심어주고 어울림을 통한 즐거움을 전해준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며 "외국에서는이같은 협동조합 방식의 노인공동체가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같은 사례가 확산된다면 노인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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