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공적자금이 어디 '善心用'인가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의 문제점은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국정감사 결과 속속 드러나고 있는 이면(裏面)을 보면 그야말로 '총체적 부실'의 심각성을 깨닫게된다. 29일 이희규 의원(민주당)이 감사원의 공적자금 특별감사 조치사항을 분석한 결과 정책판단 잘못으로 10조원의 공적자금이 과다 투입됐다는 것은 과연 국민의 혈세가 '눈먼 돈'으로 전락, 얼마나 방만하게 운용됐는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자료가 아닐 수없다.

엄정해야 할 정부기관의 의사결정을 보면 그야말로 기가 막힌다. 금융기관 구조조정의 사령탑인 금융감독위원회는 투자자가 부담해야 할 펀드 손실을 회사측이 떠안도록하는 등의 방법으로 4조5천여억원을 부당 투입했고, 재경부는 예금자보호대상이 아닌신용협동조합에도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하는 등 판단 실수로 3조4천여억원을 과다 투입했다니 도대체 국내에는 금융관련 법규나 규칙이존재하고있는 것인지 실로 개탄스럽다. 윗물이 이렇다보니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인들 원칙대로 움직일 리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경제 원칙이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데도 해당 기관들은 '정책적인 결단에 의해 취해진 조처'라며 문제의 심각성을 별로 인식하지 않고있다는 점이다. 잘못이 드러나봐야 주의 조치나 시정 통보에 그친다는 체제의 취약성을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원리를 무시한 정치 논리로 경제 문제를 해결하면 시장은 완전히 왜곡된다. 건전한 경제 상식이 몰가치(沒價値)화되면 부패는 만연하고'도덕적 해이'가 극성을 부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측면에서 98년 구조조정 당시 종금사 경영평가위원장의 최근 발언은 경제논리의 '헌신짝' 취급을 보여준 결정적인 사례다. 당시 경영평가위원회는 나라·대한종금에 대해서는 폐쇄하는 것이 옳다는 진단을 내렸는데도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따라서 나라종금의 경우 영업정지 5개월만에 다시 영업을 재개하는 촌극이 벌어졌고 결국 1년6개월만에 또다시 영업정지, 결국 파산으로 이어지는 기막힌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런 '허수아비' 경평위를 왜 운영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세금 한푼도 철저 관리해야할 당국이 국민의 의사와 상반된 자의성(恣意性) 짙은 결정을 내렸다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한다. 비록 견제장치가 미비하지만 국회는 이를 철저히 규명하고, 법적장치 마련을 서둘러야한다. 도덕적 해이는 항상 권력 상층부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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