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파일 이곳-대형 예식장 퇴조

지난 29일 오후 대구시 북구 침산동 E마트 칠성점 앞 도로. 휴일을 맞아 쇼핑을 나온 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차량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정차해 있고, 스펙트럼시티 영화관에는 가족단위의 입장객들로 붐볐다. 불과 몇 달전까지만해도 인근 명성웨딩 주변에서 일어나던 모습이 이제는 자리가 바뀌었다.

주말마다 수많은 사람과 차들로 붐비던 명성웨딩은 이제 여기저기 파헤쳐진 텅빈 주차장때문에 을씨년스럽기만하다. 60~90년대 한 시대를 풍미한 대구시내 대형예식장들이 사라지고 있다.

명성과 고려, 삼성, 황제 등 수십년동안 대구시민들의 결혼식장으로 각광받아온 유명 대형 예식장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고 있다. 한때 심각한 교통체증 문제와 그릇된 상혼으로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수많은 젊은이들의 첫 출발의 자리였던 대형예식장들이 몇 년새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폐업을 신고하거나 업종 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대구지역 예비부부들이 가장 선호한 예식장이었던 명성웨딩이 최근 영업을 중단하고 예식장 부지를 한 건설업체에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식홀 12개, 부지도 7천평이 넘어 대구 최고규모를 자랑했던 명성웨딩은 조만간 헐리고 지상 42층 규모의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

부지를 매입한 건설사측은 오는 2005년까지 공동주택과 오피스텔을 건축하기 위해 대구시에 교통영향평가를 신청, 현재 심의에 들어간 상태. 반면 북구청은 침산동 일대의 교통, 녹지, 학교난 등을 들어 허가기관인 대구시에 모든 공동주택에 대한 신축허가 유보를 공식 요청하고 있다.

명성웨딩과 함께 대구 예식업계를 이끌었던 중구 계산동 고려예식장은 이미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예식장측은 건물을 헐어내고 도심 주차장 건립 붐에 맞춰 주차 130대 규모의 대형 유료주차장으로 전환했다. 혼례예식장업이 신고업종으로 분류되면서 수익성이 악화돼 결국 폐업하게 됐다며 투자비가 적은 유료주차장으로 바꿨다는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구 서구지역 최대 예식장이었던 서구 내당동 황제예식장도 지난해 폐업했다. 황제예식장 부지에는 현재 부산에 본사를 둔 대형할인점인 '탑마트'가내년 상반기중 개점을 목표로 공사에 한창이다. 또 서문시장 인근 삼성예식장도 재개발돼 상가, 병원 등이 들어섰고, 달서구 송현동 그랑프리 예식장도매각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구 신암동의 궁전예식장도 문을 닫은 뒤 골프연습장 등 스포츠레저시설이 들어서는 등 최근 2, 3년새 상당수 전문예식장이 폐업했거나 영업중단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대형예식장들의 퇴조는 혼례예식장이 허가업종에서 신고업종으로 바뀌면서 시작됐다. 지난 94년 개정된 '가정의례에 관한 법'에 따르면 '의례식장 등의영업은 영업신고서를 그 영업소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따라 업종 대형화 추세속에서도 예식업계는 대형예식장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반면 신고만으로도 영업이 가능해지면서 중소규모의 예식장이우후죽순처럼 새로 생겨나 대형예식장들의 경영악화가 심화됐다. 이처럼 예식업계의 판도변화가 급격히 이뤄지면서 90년대에 모습을 드러낸 알리앙스웨딩타운, 늘봄예식장, 문화예식장 등 제2세대 대형예식장들의 등장과 호텔, 요식업체들이 부대사업으로 예식업무를 병행하면서 기존 대형예식장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또 공공기관의 혼인예식장소 개방도 한 몫했다. 지난 99년 제정된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국가기관의 장, 지방자치단체의 장, 공공기관·단체 및 국공립대학 등의 장은 업무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강당·회의실 기타 시설을 혼인예식의 장소로 적극 개방하여야 한다고 규정해 예식장소의 다변화가 초래됐다.

각 구청 강당과 대구문예회관 등 대구시 산하 사업소 등은 주민들이 주말, 휴일에 무료 예식장으로 활용하고 있어 대형예식장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젊은 층의 취향 변화도 예식업계 판도 변화를 가져온 요인중 하나다.

특히 신고업종으로 전환된 뒤 젊은 층의 취향에 맞춘 중소 규모의 예식 뷔페와 웨딩숍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같은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대부분의 대형 예식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소형 예식장은 웨딩뷔페, 웨딩숍 등을 중심으로 최근 몇년 사이에 10여개나 새로 문을 열어 현재 대구시내 예식장은 공공기관 예식장소까지 포함해 모두 70곳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역 예식업계 관계자는 "중소형 예식업체와 달리 대형예식장은 막대한 관리비가 들어 예복대여나 사진촬영 등 사업으로는 적자를 면하기 힘든 실정"이라면서 "대형예식장은 인구감소에 따른 예식수요 감소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특히 70년대 가족계획이 본격화한 이후 태어난 세대가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서 예식수요가 준 것도 한 요인이다. 이 때문에 최근 몇 년새 결혼성수기때도대부분의 예식장 예약율이 예년에 비해 70%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중소형 예식업소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 최근 동대구관광호텔이 예식업을 포기하고 새로운 부대사업에 뛰어들 채비를 갖춘 것만 봐도 업계의 사정을 알 수 있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기가 버거워 각 업소마다 더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대구시내 대형예식장의 한 관계자는 "중소형 예식업소와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 대형예식장들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라며 "기존의 영업전략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고급화 등 경쟁업소와 차별화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털어놓았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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