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 3년 전부터 유행하는 신조어 중에 '기러기 아빠'라는 것이 있다. 초교생이나 중학생 자녀를 조기유학 시키려고 아내를 딸려서 미국에 보내놓고 혼자 독수공방하면서 돈벌어 부치는 30, 40대의 중년 가장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 기러기 아빠는 대부분 중산층 출신으로 고등교육을 받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기러기 아빠가 가능하려면, 적어도 아내가 미국생활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의 영어실력과 국제감각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들 아내도 남편과 비슷한 수준의 재원이다. 결국 기러기 아빠는 이 사회의 엘리트층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몇년 전만해도 자녀의 조기유학을 위하여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 영어권 나라로 교육이민을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 부모들이 자녀교육을 위해 삶의 터전을 버리고 선뜻 해외이민을 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상당한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 기러기 아빠로 돌아서는 추세이다. 이들은 교육이민을 가는 것보다 홀로 한국에 남아 뒷바라지 하는 것이 자신과 자녀 모두에게 유리할 만큼 우리 사회에서 일정한 존경과 고소득을 올리면서 혜택을 누리고 사는 엘리트들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녀교육을 위해 이민을 가고 싶다는 학부모가 48%에 이르고, 아내와 자식만이라도 보내고 싶다는 학부모가 45%에 이른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서울 강남이나 경기 분당신도시의 아파트에 가면 세집 걸러 한 집은 기러기 아빠라는 입소문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어린 자녀들이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기유학을 떠나는 일은 없다고 했을 때, 기러기 아빠는 우리 사회의 학부모, 특히 엘리트층의 가치관 혼란이 사회 붕괴를 가져올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녀교육이라는 주제만큼 영향력이 큰 것이 없다. 그러나 자식의 미래를 위해 부모의 인생이 희생되어야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중산층은 남보다 자식교육 잘 시킨다고 아버지를 돈버는 기계로 전락시켰을 뿐 아니라 부부간의 강제적 별거를 자처하고 있다.
이들에게 왜 그렇게 사냐고 묻고 싶다. 아버지의 부재가 성장하는 자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리도 없겠지만 기약 없이 떨어져 사는 부부관계가 좋을 리가 없다. 설사 조기유학이 성공했다 하더라도 자녀들은 자신의 교육 때문에 부모가 희생됐다는 사실을 평생 부담스러워 하면서 부모의 기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리라는 것을 왜 생각지 못할까?
노진철(경북대교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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