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소년들의 유골 발견 현장이 과연 마을의 불빛이 보일만한 곳인가를 두고 경찰과 주민들이 다시 한번 이견을 드러냈다. 마을의 불빛이 보인다면 이곳에서 조난 당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제 때문이다.
유광희 대구경찰청장은 3일 수사본부를 찾은 이팔호 경찰청장에게 수사 브리핑을 통해 "유골 현장과 인접 서촌마을은 300m 정도떨어져 있지만 마을 앞의 '안산'이 가로막고 있어 마을의 불빛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요지로 보고했다.
당시의 일대 항공사진을 대구시청으로부터 입수해 분석한 바 지금은 아파트단지, 빌라, 식당 등이 들어서 있는 와룡산 자락이 있었음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길을 잃고 계곡에서 탈진했다면 그 '안산'때문에 마을은 물론 인접 구마고속도 불빛조차 보기 힘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요지였다.
그러나 서촌마을 주민들은 전혀 다른 판단을 보였다. 마을 자체는 '안산'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마을에서 떨어져 유골 현장과 더 가까운 안산 고지대에 10여채의 민가가 별도로 자리잡고 있어서 그 불빛은 보지 않았을리 없다는 것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당시 서촌마을은 모두 40여 가구. 그 중 30여 가구는 지금의 용산동 서촌2, 3길에 살았으나 나머지 10여채는 더 북쪽 고지대인 지금의 서촌1길에서 농사를 지었다. 60여년 동안 이 '고지대'에서 계속 살고 있다는 임말희(80) 할머니는 "유골 현장에서 30여 가구가 있는 마을은 잘 보이지 않지만 고지대 10여 가구는 잘 보였던 기억이 뚜렷하다"고 했다.
서촌마을에 살다 최근 경기도 평택으로 이주한 도재문(70)씨도 "그곳에서 조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도씨는"유골 현장은 문중산이어서 눈감고도 훤하다"며 산이 깊지 않아 어린아이라도 조난사할 만큼 험하지 않고, 불미골에서 산능선을 넘어 세방골로 내려오는 지점으로 능선에서는 동네 불빛뿐 아니라 구마고속도도 훤히 내려다 보인다고 강조했다.
또 당시엔 유골 현장 기준으로 200여m 이내 범위에 퍼져있는 곳곳에 수백그루의 뽕나무가 자생해 봄철엔 동네 아낙들이 오디를 따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그곳을 왕래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70여년을 지금의 서촌 2길에서 살고 있다는 한 할머니(83)는 그때문에 "만약 그곳에서 어린이들이 희생됐다면 냄새 때문에라도 저절로 알게 됐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3일 브리핑에서 경찰은 당시 지명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내 또 불신을 샀다. 수사본부는 유골 현장과 300여m 떨어진 서촌마을 사이에 '염산'이라는 와룡산 자락이 존재했다고 강조해 조난 가능성을 다시 제기했지만, 주민들은 산 이름이 '안산'이라고 확인했다.'염산'은 유골 현장에서 1km 떨어져 있는 성서초등학교 뒷산을 일컫는 지명이었다는 것.
경찰은 또 유골 현장 바로 밑에 있었던 50사단 각개전투장을 영점사격장으로 잘못 표기해 한바탕 촌극을 벌였다. 이 잘못은 "영점사격장이 유골현장 바로 밑에 있다면 유탄에 의한 사고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라며 기자들이 재확인을 요구하자 뒤늦게 정정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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