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학원화하는 학교교육

모든 사람이 전문가라고 한다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전문가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전문가는 대체로 어떤 특정한 부분을 오로지 담당하여 특히 그 부분에 정통한 사람을 일컫는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라는 속담이 분명하게 말해주듯이 한 사람이 어떤 것을 전문적으로 탐구하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모든' 사람이 전문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전문가라는 말은 결국 사람마다 달라지는 각양각색의 의견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정책과 의지가 없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현상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비전을 제시할 정책과 의지가 없으면, 현상 그 자체가 정당화되는 경향이 있다. 달리 제시할 정답이 없다면 현실이 정답이라는 것이다. 잘못되었다고 수도 없이 지적하였지만 고쳐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어느 시점부터는 개혁의 필요성마저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모든 사회적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던 것이 갑자기 '숨겨진' 사회적 역량으로 둔갑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가 지금 말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교육'의 문제이다. 교육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정도로 우리 국민은 모두 자녀 교육에 열성이다. 모든 국민은 지나친 교육열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이것이 교육열에서 산출되는 이익보다 크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믿을 것이 교육밖에 더 있느냐는 주장이 그렇고,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는 항변이 그렇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교육은 정말 글자 그대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렸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202개 경제.무역.사회지표로 본 대한민국' 보고서를 보면, 모든 사람이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육문제를 '그래도 어떻게 해봐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총생산 중 사(私)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96%로 전세계 1위를 차지하였는데, 토플 점수에서는 119위로 하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교육의 효용성 문제'와 '사교육의 비대 현상'이다. 교육이 자원 빈국의 유일한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교육의 효용과 관련된다. 예컨대 지식기반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창의성이라고 한다면, 학교교육은 창의성 개발에 맞춰져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존의 지식을 단순히 전달하는 암기 위주의 교육보다는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이해력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 더욱 적합하다.

창의성을 추구하는 교육은 단순한 지식전달을 목표로 하는 교육보다 호흡이 길다. 전자가 이해의 과정을 중요시한다면, 후자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선호한다. 그러므로 공교육은 대체로 호흡이 긴 이해의 교육을 담당하고, 사교육은 교육의 결과가 나쁠 경우 그것을 개선하는 보조적 기능을 담당한다.

만약 영어 교육의 일차적 목표가 영어로 의사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의 개발에 있다면, 우리는 영어를 그렇게 열심히 배웠으면서도 왜 영어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인가? 둘째 가라하면 서러울 정도의 영어 교육열과 토플 점수가 세계 하위권이라는 통계 사이에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공교육이 없기 때문이다. 공교육의 상실은 일차적으로 사교육의 비만에 기인한다. 요즈음 많은 학생들은 학교보다는 학원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여기서 '더 잘'이라는 것은 대체로 '시험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공교육의 상실은 오히려 왜곡된 학력주의로 인해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태도의 보편화와 관련이 있다.

학원의 도전을 받은 학교도 이제는 '정신'을 차린 것처럼 보인다. 어느 대학을 몇 명 합격시켰다는 것이 이미 교육 평가의 척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도 이제는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중시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학교가 이제 학원이 되려고 작정한 것일까? 그렇지만 그것은 공교육을 살리기는커녕 학교로부터 '교육정신'을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라도 사교육이 비대해지면 질수록 호흡이 긴 창의성 교육이 질식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진우(계명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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