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이라는 중국책이 있다. 마음의 때가 켜켜이 쌓였다고 느낄 때 꺼내 읽노라면 새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어 마음청소용으로 그만인 책이다. 이 책을 펼칠 때마다 참 와닿는 구절이 있는데 바로 '병처에 기웃거리지 말라'는 당부다.
'병처'란 병풍을 처놓은 곳을 말하는데 옛날에는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나눌 때 병풍으로 주위를 가렸기 때문에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오가는 곳을 병처라 했다. 채근담에서는 남이 먼저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를 주워듣고자 병풍 친 곳을 얼쩡거리는 것은 소인배나 하는비열한 짓이니 숨기고 싶어하는 남의 사연은 알아도 모른척, 몰라도 모른척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한데 이처럼 간곡한 옛 어른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병풍 친 곳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남이 숨기고 싶어하는 사연을 기필코 알아내어 널리 전파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들 중에는 있는 사실에다가 자기 생각까지 보태서 소설을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같이 운동 다니는 친구가 며칠 결석하면 틀림없이 남편에게 두들겨 맞은거라 단정짓고 전화로 집요하게 확인하려는 사람, 손주 좀 봐주고 있으면 그 집 아들내외한테 십중팔구 뭔 사단이 났다고 온 동네 사발통문 돌리는 사람, 늦게까지 결혼하지 않고 있는 처녀 총각을 보면 아직도혼자인 데는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여러 사람 붙잡고 원인분석 하면서 가뜩이나 힘든 혼사길 더 막아놓는 사람, 늦은 귀가길 성폭행 당할 뻔했던 아이가 어느 집 딸인지 온 동네에 친절히 알려주고 평소 행실이 단정했네 마네 운운하는 사람 등등 남의 사생활에 관해 궁금한 게 무궁무진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재미로, 또는 무심코 뱉은 말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몇날 며칠 불면의 밤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괘씸한 마음에 들던 수저를 내려놓게도 만든다. 그냥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 개인사나 가족사에 기웃거리고 입을 댈 때 그 무례함과 무신경함은 남의 마음에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원망의 마음까지 일으키고 결국은 나에게 해가되어 돌아온다.
현인이 병처를 피하라 당부했을 때는 결국은 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었으니 남이 불편해 할 일은 봐도 못본 척하고, 못봐도 알려고 안달하지말자. 자기 자신만 돌아보기에도 너무 짧은 가을이다.
계명대교수·광고홍보학 양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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