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대상선 산업은행서 빌린 돈 용처는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빌린 자금의 용처가 정몽헌 회장의 계열사 지분확대용일 가능성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2000년 현대 34개 계열사가 몽헌 그룹과 몽구 그룹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정몽헌 회장은 당시 고 정주영 회장의 지분을 사들이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정몽구·몽준형제의 지분까지 호시탐탐하고 있었다.

◆3개월간 계열사 지분 집중매입

현대상선은 자금난이 심각했던 그해 5월26일 옛 현대전자 지분을 팔아 1천579억원을 확보했으면서도 운영자금이 아닌 현대중공업 주식 910만주를 취득하는데 1천933억원을 사용했다.

현대상선은 또 이날 현대아산에 560억원을 출자하기도 해 하루만에 2천493억원을 계열사 지분확대에 투입했다.

현대상선은 이와함께 산업은행으로부터 당좌대월 4천억원을 빌린 6월7일 당일 현대건설 기업어음(CP) 1천억원 어치를 사들이는 등 6~8월 사이 12차례에 걸쳐 '여유자금 운용' 목적으로 현대건설 CP 3천억원 어치를 매입했다.

정몽헌 회장측 계열사들이 그해 5월25일부터 6월9일까지 계열사 주식 매입대금으로 4천108억원을 쓴 것도 정 회장이 당시 계열사들의 유동성 위기를 막는 것보다는계열사 지분을 확대하는데 더 관심을 썼던 반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현대상선은 6∼8월 사이 이사회만 15차례 정도 열어 대부분 만장일치로 계열사 지분매입을 결정했다.당시 정부도 '왕자의 난' 이후 현대그룹의 계열분리를 측면에서 지원하던 상황이었다.

◆김충식 사장의 퇴진

김충식 현대상선 회장의 갑작스러운 퇴진도 정몽헌 회장측이 계열사 지분확대를 얼마나 서둘렀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2000년 3월 정몽구·몽헌 형제간 '왕자의 난' 이후 정몽헌 회장을 보좌해온 김충식 사장은 현대그룹내 부실 계열사 지원 여부 등을 놓고 정회장을 비롯한 가신그룹과 자주 마찰을 빚어오다 지난해 10월4일 전격 사표를 냈다.

현대상선은 대북사업에서 손을 떼고 금강산 관광호텔을 현대아산에 넘기는 과정에서 1천만달러의 매각대금 중 90%에 해당하는 잔금을 받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2000년 11월께에는 '현대상선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팔아 법정관리 위기에 몰린 현대건설을 지원하라'는 정 회장의 지시를 거절하는 항명소동을 빚기도 했다.

김사장이 정 회장측의 위기에 빠진 계열사 지원을 명분으로 한 지분확대 압력에 맞서 독립경영을 외치다 결국 좌초했던 것이다.

◆남는 의문들

김충식 사장이 엄낙용 전산업은행 총재에게 "정부가 쓴 돈이니 갚을 수 없다"고 밝히고 엄 전총재가 김보현 국가정보원 대북3차장과 면담을 한 것은 아직도 대출금이 대북송금용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현대상선의 2000년 반기사업보고서는 오류가 계속 드러나고 있는데 결산보고서는 외부감사 결과 '적정의견'을 받는 등 하자가 없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정몽헌 회장측이 반기보고서의 문제점을 뒤늦게 파악하고 급히 결산보고서와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역산(逆算)을 통해 계열사 지분을 위장 매입하지 않았나 하는 시나리오까지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산업은행의 대출과정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지만 '대북송금용'은 절대 아니라면서도 적극적인 해명을 피하고 있는 현대상선의 '말못할 사연'이 무엇인지가 이번 사태의 실마리를 푸는 관건이 될 전망이다.

4일 금융감독위원회와 산업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문제점에 대한 현대상선과 산업은행의 답변이 개진될 예정이어서 의혹이 일부 해소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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