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계좌추적 '法타령' 하지말라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4천900억원을 몰래 대출해준 사건의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국민들은 "그거, 숨겨봤자 오래 못갈 것"임을 이미 믿고 있다. 정권이, 검찰이 그토록 감추려고 발버둥쳐온 각종 게이트와 대통령 아들들의 권력형 범죄도 마침내는 그 진실의 뚜껑을 열어버렸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현대가 정부뒤에 몸을 숨기고 "어떻게 좀 해봐"하고 애처롭게 매달려있는 사이, 왜 그 돈이 대북송금설과 '현대계열사 지원설'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는지를 읽어낼만큼 눈치도 빨라졌다.

이 사태를 일거에 희석시키고, 반전시켜줄 대타(代打)거리를 기다리는 정치권의 속내까지 캐낼만큼 성숙해버린 우리 국민앞에 '계좌추적 불가'라며 이번엔 정부가 법뒤에 몸을 숨기고 있으니 우스운 노릇이다.

이러니 한나라당도 물증제시는커녕 대선(大選)용으로 즐기려고만 하지 않는가? 그러나 꼭꼭 숨어봤자 머리카락은 보이게 마련이다. 현대상선에 대한 계좌추적은 정부의 '의지'의 문제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대북송금설은 대출금 내역이 사라진 '금융사고'나 장부외거래로 보면 금융실명법 위반으로 다룰 수 있고, 계열사 지원설은 부당내부거래 행위 즉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얼마든지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계좌추적 관련법의 모호성 뒤에 숨어버린 것은 진상규명 생각 없다는 뜻에 다름아니다.

현대도 버티고 산업은행도, 재경부도 버티고 청와대도 입 다물고 있는 이유가 대북송금이든 계열사 지원이든 간에 밝혀지면 깨어진다는 절박감때문이 아니라면, 말못할 더 기막힌 사연이 있단 말인가?

산업은행의 4천900억 몰래대출이 들통난 이후 꼭 1주일동안 이 '의혹'은 현대상선측의 4천억원 회계장부 누락에서부터 1천억원 별도대출 은폐, 3천억원 분식회계로 확산됐고 오늘 아침엔 산업은행의 작년 5천여억원 추가대출까지 폭로됐다. 더구나 재작년 4천억원 대출서류의 조작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정부와 관련부처는 그야말로 궁지에 몰린 꼴이니, 동정불금(同情不禁)이다.

결국, 남북 정상회담을 겨냥한 대북 송금이 아니라 쳐도 대북사업을 위한 당국의 '현대 특혜'인상만은 지울 수가 없다. 문제의 당좌대월 4천억원이 인출뒤 64장의 자기앞 수표로 잘게 쪼개졌다는 사실 하나에서도 돈세탁 및 용처(用處)의 의혹은 명백하다.

현대는 더 이상 버티지 말라. 정부도 버텨서 무슨 실익이 있는가. 이 문제에서 시간은 언제나 진실의 편, 사실의 편, 국민의 편이다. 의혹을 밝히면 두다리 쭉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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