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시민혁명의 대명사인 프랑스 대혁명은 바스티유 감옥에서 출발, 콩코드 광장에서 절정을 맞는다. 콩코드 광장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곳이다. 파리 시민은 물론 프랑스 국민의 정신적 구심점인 콩코드 광장은 오늘도 샹젤리제 거리의 끄트머리에서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그런데 '화합'을 뜻하는 콩코드 광장에는 시민혁명 정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벨리스크 하나가 우뚝 솟아있다. 약탈과 시민정신이라는 정반대 개념이 묘하게도 균형을 이루는 역사의 아이러니, 그것이 바로 콩코드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는 나폴레옹 작품이다. 이집트를 정복한 영웅의 전리품이다. 오벨리스크는 주로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길고 뾰족한 기념탑으로, 사각형인 단면에는 문자가 새겨져 있다. 사막에서 신전을 지키고 있어야 할 오벨리스크는 이렇게 아픈 생채기를 안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피정복자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는 물론, 런던의 템즈강에는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멋진 별명이 붙은 오벨리스크가 빅토리아 연안을 지키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오벨리스크는 고향인 이집트보다 이탈리아에 더 많이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로마의 왕들이 이집트 일대를 유랑하면서 약 20여개를 훔쳐다가 로마시내 여기저기에 옮겨놓은 것이다.
▲그 중 하나인 로마 도심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건물 옆에 세워져 있는 높이 24m의 악숨 오벨리스크가 고향인 에티오피아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이 오벨리스크는 북부 고대(古代)도시 악숨에 1천700여년 전 건립된 것으로 1937년 무솔리니가 약탈해온 것이다. 무게가 200t이나 나가는 돌덩어리를 당시 다섯조각으로 잘라 배로 옮겨왔다.
이탈리아는 패전 후인 지난 1947년, 유엔에 반환 의사를 밝혔으나 50년이 넘도록 함구해왔는데 수구초심(首丘初心)을 하늘도 읽은 것일까. 지난 5월에는 벼락을 맞아 상단 일부가 파손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오벨리스크는 대표적인 약탈물이다.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 앞 광장 한복판에는 이집트에서 옮겨왔음직한 오벨리스크 하나가 우뚝 서 있다. 그러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2000년간의 가톨릭 교회사의 어두운 부분에 대해 '진리를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행한 폭력'이라며 감동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문화재 약탈이라면 한국도 세계적인 피해자 중의 하나다. 외규장각 도서가 왜 낯선 프랑스에서 아직도 방황하고 있어야 하는가. 오벨리스크의 귀향이 그 특유의 뾰족한 첨탑처럼 문화재 반환의 낭중지추(囊中之錐)가 되길 기대해본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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