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업은행의 현대상선에 대한 4천900억원 '몰래대출' 외압설과 관련, 다시 국회증인으로 나온 엄낙용 전 산은총재의 입에서 한광옥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이름 석자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어떤 자린가? 대통령의 심중을 누구보다 정확히 읽고 정책결정을 보좌하는 막중한 자리다. 따라서 국민들은 그의 개입은 곧 청와대의 개입을 의미함을 믿는다. 대북송금이든 현대지원이든 간에 비밀대출·지원 의혹의 불똥이 권력의 핵심부로 비화되는 상황에서 이젠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무엇이든' 말할 때가 왔다.
엄씨는 2000년 6월 당시 이근영 금감위원장에게서 '청와대 한 실장이 하도 전화를 해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송영길 민주당의원이 어느 한쪽 편을 드는 자세는 안된다며 "청와대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나"고 물었고 이에 엄씨가 "사실대로 얘기할까?"라고 되묻자 송 의원은 "됐다"며 말을 끊었다고 한다. 국민들은 이 대목에서 사실의 '행간'(行間)을 읽는다. 바로 현대상선 대출금이 정치적인 목적과 판단에 따라 쓰여졌음을 시사하는 문답들이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에의 대출이 경제논리를 무시한채 정치적 목적에 의해 금감원과 산업은행을 동원한 것이라면 누구든 책임과 처벌은 피할 길이 없다. 더구나 '한광옥' 이름 석자에 이어, 야당에 의해 '조건부 2천400만달러 대북제의설'에 휘말린 박지원 현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출외압에 관련됐는지의 여부도 이 사건의 '뇌관'이다. 엄 전 총재의 대출금 회수 걱정에 "알았다, 걱정말라"고 했다는 이기호 경제수석과 국정원 차장들도 결코 자유롭지 못해 보인다.
청와대와 민주당측은 엄 전 총재의 증언을 인사불만에 따른 돌출행동이라며 의미를 축소하고 한광옥씨 등은 '법적 대응'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펄펄 뛰고 있지만 글쎄, 두고 볼 일이다. 재경부 차관에다 산은 총재까지 지낸 엄씨를 병풍(兵風)의 김대업씨와 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게 옳은 것일까? 그러므로 이젠 청와대가 말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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