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린이 전문 헤어디자이너 이기조 할머니

대구 중구 대백프라자 7층 아동전문 미용실 '데장팡 석 미용실'.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고불고 떼 쓰고, 보채는 아이들로 난리법석이다. 심지어 젖을 올리는 아이까지 나오는 난리통에는 웬만큼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혼이 다 빠질 지경.

이런 아이들을 달래며 멋진 솜씨를 발휘하는 할머니 헤어디자이너 이기조(64)씨. 익숙한 손놀림으로 아이들의 머리를 매만지는 이씨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와 할머니의 엄한 표정이 교차한다. 현역 헤어디자이너로는 아마도 최고령이 되지 않을까….

이씨가 미용업에 입문한 것은 1956년. 친언니가 먼저 시작한 이 일이 좋아보여 기술을 배워 활동하다 결혼과 함께 가위를 놓았다. 아이 낳고 키우고 살림하느라 20년 넘게 이 일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대구시내에서 큰 미용실을 경영하는 후배가 이제는 여유가 생겼으니 다시 해보라고 권유해 시작했다.

그의 복귀 무대는 지난 1993년 대백프라자 오픈과 함께 시작된 아동전문 미용실. 아동전문 미용실은 전국에서 데장팡 석미용실이 처음이다. 점점 더 전문화되는 미용업계의 추세에서 아동미용도 중요한 분야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그는 선뜻 동의했다.

아이들 머리결이 아주 부드러워 생각보다 하기 어렵다는 이씨는 처음에는 애를 많이 먹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겨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아이들 취향에 맞게 인테리어도 꾸미고, 손님들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려고 이곳저곳 신경도 썼다. 하루종일 서 있어야 하는 고된 일이지만 이씨는 그리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이씨의 곁에는 아들이 나란히 가위를 잡고 일하기 때문이다.

헤어디자이너 경력 7년째인 안태우(33)씨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이 일을 선택했다. 이씨만큼 태우씨도 이 일에 자부심이 강하다. 경북대 경영대학원 미용아트경영자과정에 입학한 안씨는 이 분야 최고전문가가 되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이다.

새로운 스타일을 연구, 응용하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동미용이 미용업계에서는 3D분야라고 말하는 안씨는 "일반미용실과 분위기가 달라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들이 편안해 하는 것 같다"며 "꼬마손님들이 백화점 안이나 바깥에서 알아볼 때 이 일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씨는 틈나는대로 아들 안씨와 함께 아동복지시설 등지로 자원봉사를 나선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소외된 아이들, 장애아동들의 머리를 매만지며 서로 따뜻한 정을 내는 일이기 때문에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아동미용 일이 돈을 벌기 위한 일이었다면 10년 가까이 계속해오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 이씨의 말에서 그냥 아이들이 좋고, 일이 좋아 가진 소질을 사회에 되돌려주는 즐거운 노년의 삶이 싱그럽게만 느껴진다. 서종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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