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거짓말 퀴즈 게임

요즘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치권이 내놓는 갖가지 폭로와 의혹에 뒤얽힌 퀴즈문제 를 푸는 재미로 살다시피 지내고 있다. 웬만큼 IQ가 돌아가지 않고서는 도무지 정 답을 알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실은 정답이 은어 배 속처럼 뻔히 들 여다보이기도 하는 희한한 추리(퀴즈) 문제들이어서 더 재미있다. 더구나 연일 새 롭고 충격적인 폭로.증언들이 쏟아져 나오는 데다 언론들은 매일 정답풀이 힌트 기사를 내보내주니 재미가 두 배다.

4천만 국민들로서는 셜록 홈스나 콜롬보가 된 기분으로 정치권이 쏟아 내놓은 갖 가지 의혹과 폭로 증언을 놓고 나름대로 죽일×과 살릴×을 골라내 그럴싸한 해설 을 곁들여가며 퀴즈게임을 즐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런 기묘한 범국민 탐정놀이 가 번지게 된 것은 3홍(弘) 게이트가 터질 무렵부터 시작해 김대업의 병풍 테이프 를 계기로 확산되고 4억달러 의혹, 서해도발 정보묵살 폭로 등에서 피크를 이루고 있다.

문제들은 대부분 했을까 안 했을까 식의 단답형이다. 과연 김대업의 병풍 테이프는 조작했을까 안 했을까? 4억달러는 해외 금융망을 통해 북한 계좌로 넘어 갔을까, 대출서류는 조작됐을까, 청와대는 압력 행사를 했을까 안 했을까, 서해침 범 우려 보고 항목을 국방장관 선에서 삭제 지시를 했는가 안 했는가, 청와대 비 서실장은 경의선 개통 대가로 2천400만 달러 지원 약속을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지면 사정상 대충 이 정도만 꺼내놓자.

과거 어느 정치권에서든 이러한 정치적 의 혹이나 부패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 가질 만한 추리거리는 조금씩 있어 왔다. 그러 나 DJ정권에서 나온 의혹들의 특징은 대부분 처음부터 정답이 뻔히 보이는 듯한 ' 거짓말'이 많았고 몇몇 의혹들은 쉽게 들통나면서 '양치기 정권'의 이미지를 너무 짙게 남겼다는 점이다. 3홍(弘) 게이트나 설훈 의원 로비자금 폭로 등이 처음엔 거짓말로 보호되다가 들통난 케이스들이다.

아직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채 공방 중인 숱한 의혹과 폭로들을 놓고 소주집이나 칼국수집에 모여 앉은 다수 국민들이 국정에 대한 진지한 토론 자세보다는 그야말로 퀴즈풀이 수준의 흥미거리 논란을 하릴없이 계속해 나가는 것은 탐정게임 재미를 떠나 나라 전체의 문제다.

똑같은 사안에 여.야가 서로 다른 논리로 싸우듯이 국민들의 생각들이 갈라지는 것 또한 국민통합이 필요한 우리에게는 바람직한 분위기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와대나 민주당 쪽은 제기된 의혹들이 만일 사실이고 끝까지 감출 방법도 없다 면 하루라도 빨리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고충을 털어놓고 이해나 용서를 구 하는 것이 분란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길이라 본다.

또한 야당도 진실 규명도 좋지만 국토 방위의 핵심정보일 수 있는 대북 감청 정보 부대의 감청 범위와 정도 가 여과 없이 노출되는 것이 안보와 국익에 도움될 것인가도 생각해야 한다. 청와 대 비서실장과 일본인 로비스트의 통화내용이 도청되고 국정원의 감청 자료가 야 당으로 흘러 들어가 폭로되는 것 또한 대외적인 국가위상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혹 진실 규명의 가치 못잖게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대북 정보의 기밀을 다루는 대북 정보 부대장을 국회에 출석시키고 청와대가 도청되고 대통령 비서실 의 감청 테이프가 공개될 만큼 기강이 무너지고 있는 나라. 그런 가운데 국민들은 소주집에서 퀴즈게임이나 하고 있어야 되는 한심한 세태의 근본원인은 바로 정치 권에 '거짓말'이 넘쳐난 탓이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든 절반은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추악한 폭로와 의혹의 다툼은 대선이 끝날 때까지는 끊임없이 이어질 게 뻔하다. 그동안 얼마나 더 많은 나라의 치부와 국가 비밀이 정략적 이익에 의 해 노출될지 퀴즈게임에 빠져 있는 국민들로서는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내일은 한글날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과학적인 문자. 언제 누가 어떻게 만 들었는지에 대한 역사 기록이 명확히 남아 있는 세계 유일의 문자라는 한글을 물 려받은 자랑스런 민족답게 아름다운 한글로 더 이상 더러운 거짓말은 하지 말자.

김정길(본사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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