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 법의학 현주소

개구리 소년 사건으로 법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경찰이 이 분야 조사 결과에 유일하다시피 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그 이유. 우리나라 법의학은 어느 수준에 도달해 있을까?

◇'망자의 변호사' = '사람은 죽어서도 말을 한다'고 한다. 시신 어딘가에 죽게 된 사연을 남기게 돼 있다는 것. 법의학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고, 여기서 나온 별칭이 '망자의 변호사'이다.

이 말은 법의학이 공중사회 의학의 필수 불가결한 분야임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망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실용 학문인 것.범죄 해결에 법의학을 최초로 적용한 사람은 16세기 프랑스 의학자 겸 예언자였던 노스트라다무스로 알려져 있다. 그는 죽은 여자의 양 뺨에 생긴 반점을 보고 누군가가 여자를 살해한 뒤 사체를 유기한 사실을 밝혀내 범인을 잡았다.

◇국내 법의학의 현주소 = 그러나 국내에선 제도상 문제점과 인력 부족으로 법의학이 사실상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법의학자는 30여명에 불과하고 41개 의대 중 법의학교실을 갖춘 대학은 5개(경북대.서울대.고려대.가톨릭대.전남대) 뿐이다.

이같은 인력난으로 법의학 전문가가 사건 현장에 직접 가서 현장 증거 등을 제대로 수집하거나 부검을 하는 일이 쉽잖다. 최근 보고된 대한법의학회의 '사인확인 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2000년 기준(통계청 자료) 부검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죽음은6만3천15건이나 부검이 이뤄진 것은 6.3%(4천건)에 불과했다. 부검 비율이 일본은 30%, 미국은 55%에 이른다.

부검이 아니더라도, 불분명한 죽음의 조사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사체의 의학적 검사조차 국내에서는 시행 강제 규정이 없다. 경찰이나 검사가 주변 상황 조사만으로 처리토록 허용하고 있는 것. 경북대 의대 법의학교실 채종민 교수는 "우리보다 후진국인 방글라데시의 한 의대 교수는 자기네 대학에 3명의 법의학 전문 교수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부끄러워 하더라"고 전했다.

◇외국에선 어떻게 하나 = 미국 등 상당수 외국에서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검시관(coroner)이나 법의관(medical examiner)이 현장에 출동해 경찰과 함께 수사를 벌인다. 이런 제도를 마련해 변사체 발견 때 이들의 책임 아래 시신과 관련된 판단과 처리를 하도록 하는 것.

일본 경우 90여개 의대에 법의학 학과가 있고 의대 설립 때 그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에선 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샌디에이고(인구 270만)에만도 8명의 법의학자가 있는 등 대부분 주가 10여명의 법의학자를 두고 있다. 이때문에 국내에서도 법의학 전문가 양성과 경찰관 전문화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됐고, 그래서 나온 구상이 경북대 의대에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수사과학대학원'을 설립하려는 것이다.

◇개구리소년 사건의 경우 = 현재로서는 이번 사건 해결 기대도 거의 법의학적 조사에 집중되고 있으며 조만간 결과가 나오기 시작할 전망이다. 고신대 법보전.생물학 연구소는 오는 14일까지 곤충학 검사 1차 결과를 수사본부측에 통보하겠다고 8일 밝혔다.

문태영 소장은 개구리소년들의 의복에서 번데기가 성충으로 변하는 과정의 곤충 각질(껍데기)을 채취, 실험을 거듭해 왔다. 곤충학 검사는 시신 부패 때 달려드는 파리의 종류가 시간대 및 장소에 따라 다르다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 청파리는 숨진 지 5분 이내에 가장 먼저 달려들지만, 금파리.쉬파리 등은 시신이 어느 정도 부패해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늦게 오는 파리의 흔적만 발견되고 먼저 오는 파리의 흔적이 없다면 숨진 뒤 일정 시간 이후 누군가에 의해 시신이 유기됐을 가능성을 높게 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또 도시나 바닷가 등 다른 지역 서식 곤충 잔해가 발견되면 이는 시신이 옮겨졌을 가능성을 높일 전망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세미나 참석차 출국한 문 소장이 9일 돌아오는 대로 추가실험을 거쳐 1차 결과물을 수사본부에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대 법의학팀도 7일부터 2차 방사선 정밀 검사에 들어 가 분야별 전문 교수들의 자문을 받아 뼈의 외상 및 골절 여부를 재차 확인하고 있다. 이번 주 안으로 방사선 정밀 검사를 끝낸 뒤 다음 주부터는 팀원마다 개별 보고서를 작성, 2~3주 후 최종 감식 보고서를 수사본부에 통보할 계획.

채종민 교수는 "국과수로 보내지 않은 일부 흙에 대해서도 방사선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며, "흙 속에서 금속 등 다른 이물질이 발견될 경우 개구리소년 사인과의 연관성을 집중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토양학 검사를 실시 중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3~4주 후면 구체적 결과물을 내 놓을 전망이다. 국과수 화학분석과 관계자는 "유골 주변 흙과 돌이와룡산의 특성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집중 검사하고 있다"며 "늦어도 이달 안으로 토양학 검사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