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가기강 해이 '통제 불능'

정부가 7일 공직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고강도 특별감찰'에 나서기로 한 것은 국정원과 검찰, 경찰, 군(軍) 등 국가의 핵심조직들의 기강이 통제불능 지경까지 풀어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벌써부터 권력·정보 기관 내부에선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들이 연말 대선을 앞두고 내부기밀을 유출하거나 특정 정당에 대한 줄대기에 나서는 등 공직기강을 무너뜨리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기밀유출 등 기강해이=국회 국방위의 최근 국방부에 대한 국감에서 정보·기밀부대인 5679부대의 한철용 부대장(육군소장)이 군 기밀인 '블랙북'(일일 북한정보보고서)을 외부에 공개한 게 단적인 사례.

상명하복과 기밀유지가 생명인 군에서 국방장관, 합참의장 등 군 최고위 간부들이 지켜보고 언론까지 취재중인 상황에서 기밀이 유출됐다는 점에서 정권말기 국방부의 기강이 어느 정도까지 흐트러졌는지 짐작케 한다.

정치권 줄대기나 기강해이 차원을 떠나 현역장성의 공개적인 기밀유출은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군의 특성상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몰지각한 행태라는 지적이 팽배하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최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고급정보들이 제보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지난달 11일 청와대 식당 조리사인 전모씨(9급)가 김모 행정관(4급)과 함께 펴낸 '청와대 사람들은 무얼 먹을까'라는 책도 '성역을 부쉈다'는 평가도 있지만 청와대 보안시설과 을지훈련 사항, 경비병력 인원, 대통령 행사 준비과정 등 대외비가 여과없이 공개됐다는 점에서 나사가 어느 정도까지 풀렸는지를 가늠케 하고 있다.

◇정치권 줄대기=지난 97년 대선에 앞서 전태준 당시 의무사령관이 이회창 후보의 동생 회성씨와 수차례 만난 일 때문에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 공모 의혹이 거론되고 있는 것처럼 공무원들의 특정 정당 또는 대선후보에 대한 줄대기도 횡행하고있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특히 국정원과 검찰 등 권력 핵심기관의 일부 간부나 직원들이 수사내용 및 정보기밀을 고의로, 또는 정치권과 사전 협의하에 은밀하게 유출시키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와 관련, 국회 법사위 소속 민주당 함승희 의원은 최근 법무부 및 감사원에 대한 국감장에서 "공직기강이 확립되지 않는 한 중립적 대선관리는 어렵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복지부동=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사활을 걸고 있는 검찰의 병역비리 수사와 관련, 최근 검찰에선 수사담당자가 검찰 최고간부에게 수사상황을 보고하면 배석했던 중간간부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대선의 승패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선정국의 뇌관인 병역수사 문제에 대해선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게 상수'라는 자조까지 나오고 있다는 후문이다.이에 따라 검찰에선 정부의 임기말 흐트러진 사회 분위기를 틈타 각종 범죄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있는데도 새로운 사건에 대해선 가급적 손을 대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는 현정부내에서의 승진도 기피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런 사정은 다른 정부부처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임기말 인사에서의 승진을 피해 가급적 한직을 희망하거나 아예 2, 3년간 장기 해외연수를 원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대책=이에 따라 정부는 9일께 김석수 총리 명의의 '공직기강 감찰을 위한 특별지시'를 내린 뒤 강도높은 공직기강 확립에 나설 방침이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관계자는 "총리가 공직기강 확립을 위한 특별지시를 내리기로 한 것은 이번 공직기강 감찰이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고강도 공직기강 확립에 나서기로 함에 따라 청와대, 총리실, 감사원 등 유관기관들은 공직기강 확립을 위한 대대적인 점검활동에 나설 것으로 보이며, 공직사회에는 긴장감이 감돌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임기말을 맞아 곳곳에서 권력누수 현상이 빚어질 조짐이 감지되고 있어 이번 공직기강 특별감찰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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