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림이야기-컬렉터(2)

컬렉터는 비밀이 많다?

화랑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열정적인 컬렉터들과 가끔 자리를 함께 할 때가 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직업 때문인지 그들과 얘기를 나누다 "누구 작품을 갖고 있습니까?"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 근데 돌아오는 답변중 열에 아홉은 "뭐 별거 없습니다. 돈 안되는 그림 몇점 정도죠…"하는 것이었다.

뒷날 '아무개씨는 무슨 무슨 그림을 갖고 있는데 금액으로 따지면 어마어마하다'는 귀동냥을 한 후에야 컬렉션의 규모를 어렴풋이 알게 된다. (이것도 소문인지라 진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요즘은 그런 자리가 있어도 그들의 컬렉션 정도에 대해 잘 묻지 않게 됐다.

한 화랑 사장의 얘기. "저의 오랜 친구는 20년 이상 그림을 모아왔지만 자신의 컬렉션 규모에 대해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습니다. 박수근 이중섭 등 고가의 그림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나도는 것을 확인하려 해도 도통 입을 열지 않아요".지역 컬렉터들의 경우 그림을 살때도 화랑이나 중간상인에게 꼭 비밀을 지켜줄 것을 당부하고, 그 비밀은 대개 지켜지는게 원칙이다.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미술품 도난을 우려해서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술품 도둑이 크게 설쳤다. 80년대 후반 지역의 한 중간상인이 수억대의 피해를 입었는가 하면 화가들의 아틀리에에도 도난 사건이 잇따랐다. 대부분 컬렉터들이 집안에 허술하게 미술품을 보관한 탓에 도둑들의 표적이 됐고, 도난당하고 신고조차 못한 경우도 많았다고.

또 주위의 사시적인 시선도 컬렉터들의 부담이다. 한 50대 컬렉터의 얘기. "그림 모은다는 걸 알면 주위에서 이상하게 수근대요.'돈이 남아돈다'부터 '언제부터 고상하게 놀았다고…'까지 별소리를 다해요. 심지어 몇억원대의 그림을 갖고 있다고 하면 '사기꾼'취급을 받기도 하죠". 여기에는 남의 얘기 하길 좋아하는 대구의 독특한 풍토가 한몫을 한다는게 컬렉터들의 토로.

대부분 컬렉터들은 자신의 수집품을 집안에 꼭꼭 숨겨두고(고서화.도자기의 경우 더욱 심하다) 혼자 보고 즐기는게 보통이다. 혼자 감상하면 감동이덜할지 모르지만, 안전성.보안성 측면에서는 완전무결 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거래와 보관이 이뤄지지 않는 분위기 탓에 대구가'가짜의 천국'이란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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