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꼭 제삿날이 아니어도

밥상에 대고 머리 조아리던 겨울 아침을 지나왔다.

아내와 아이

셋이서 아무 말 않고 엎드려 맞절하고

대문을 나서고 싶던 아침도 있었다.

그러나 끝내 말하여지지 않을 숱한 아침을

나는 붉은 햇살과 함께 가슴에 묻어두었다.

이 모든 세상의 아침을 추억하는 일만으로도

절해고도의 또 한생을 묵묵히 견뎌낼 수 있겠다!며

메타세쿼이어 초록불 하늘로 솟구치는 길 따라

지평선까지 내처 가고 싶던 아침이 있었다.

-이면우 '세상의 모든 아침'

◈ 밥상을 앞에 두고, 문득 오늘 하루도 용케 이 밥이 내 입속으로 들어가는구나 하는 생계의 위태로움! 아니면 한 알의 밥알을 위해 태양, 맑은 바람, 이슬, 농부의 수고 등에 대한 깊은 감사함 때문에 정말 제삿날이 아니어도 밥상 앞에서 마구 절하고 싶은 때가 있다.

또 이 흉포하고 간난한 세월, 아무 탈없이 하루하루 대문을 무사히 나설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여 누구에게나 마구 절하고 싶은 그런 아침도 있다. 정말 우리는 이런 삶을 살고 있다 친구여.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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