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동처럼 위기도 순환하는가. IMF(국제통화기금)체제를 우등으로 졸업했다는 들뜬 분위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위기 재발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병도 재발하면 아픔이 배가(倍加)되는 법, 홍역을 한번 치른 우리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재앙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경고음을 재빨리 포착, 대비하는 수뿐인데 아직도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외환위기는 '세계화'의 희생물이다. 그런데도 97년 위기 당시 빚쟁이인 우리로서는 채권자들의 일방적인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대표적인 비난이 한국사회는 부패했고 합리적이어야 할 자본주의는 정실(情實)에 물들었다는 것이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답은아니었다. IMF식 처방이 오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우리가 위기의 벗어난 최근의 일이다.
이제 IMF가 공격을 받고 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컬럼비아대학의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가 선봉이다. 그는 '세계화와 그 불만들'이라는 최근 저서에서 세계화는 마치 '항해 솜씨가 서툰 선장에게 조그만 배를 맡기고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대양으로 몰아내는 것과 같다'고 비난했다.IMF와 IBRD(세계은행)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그가 그들의 잘못을 직접 비판하는 카랑카랑한 '학자적 양심'에 고개가 숙여진다.
특히 한국과 관련된 분석은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당시 IMF는 위기국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 인도네시아에서는 은행이 문을 닫는방향으로 정책을 펼 것을 강요했다. 이 결과 대부분의 은행이 문을 닫고 불안을 느낀 예금주들은 정부은행으로 몰려들었다.
이런 경직된 금융시스템으로 인해 경제는 침체에 빠지고 불황은 깊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충고를 무시하고 은행 문을 닫는 것보다 2개의 거대한은행으로 합쳐 자본을 재구성했는데 이것이 바로 한국이 위기를 빨리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라는 것이다.
또 하나,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것은 반도체 관련 정책이다. IMF는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에 대해 잘 알고있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초과생산능력을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현명하게도 한국은 그 지시를 거부했다. 곧 이어 반도체 수요는 살아났으며 경제는 즉시 회복됐다. 만약 IMF의 지시를 따랐더라면 한국 경제는 아직도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시 한국이 과연 이런 예단적(豫斷的)인 지혜를 갖고 IMF의 충고를 무시했냐는 점이다. 노조의 저항에 못이겨 폐쇄보다는 은행 합병쪽으로 갔고, 반도체는 정부의 무지로 인해 이를 방치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전화위복되는 행운을 잡은 것은 아닐까. 후자의 경우라면 우리 경제의앞날은 암울하다.
지구촌의 분위기는 더욱 좋지 않다. 주식시장이 활황이던 지난 봄, 예일대 로버트 쉴러 교수는 "미국 주식시장의 거품은 더 빠질 것"이라고경고했다. 그는 최근 저서 '이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에서 역사적 불황기에는 반드시 주가수익률(PER)이 과대평가돼 있음을 밝혀냈다.
특히 현재의 주가수익률은 45로 역사상 평균치인 15의 3배 수준이라고 한다. 그는 거품이 완전히 걷히려면 PER이 10 정도가 돼야한다며 주가 폭락을 예언한 것이다. 미래학자의 예측과는 달리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한 경제학자의 주장인 만큼 '이상 과열'은 지금 미국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렇게 '비관론'이 득세를 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전혀 무감각한 분위기다. 지금은 다가올 두 번째 해일(海溢)에 차분히 대비해야할 시점이다.주식에 관심 많은 독자를 위해 '이상 과열'에 실린 미국의 연도별 주가수익률 표를 아래에 전재하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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