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가을 보내기

그런지 알 수가 없어요 나 혼자 멀리 떠나고 싶어요….

'낙엽'이라는 유행가 가사 소절이 귓전에 착착 감기는 걸 보니 가을이 오긴 왔다. 일조량이 줄어들면, 또 기온이 내려가면 괜히 울적해지고 딱히 구속하는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일상에서 벗어나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그런데 가을에만 그런가 생각해보니 일년 내내 그런 것 같다. 봄에는 싱숭생숭해서 어디론가 가고싶고 여름에는 지친 심신에 활력을 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남에게 질세라 가방을 꾸리게되고, 겨울에는 또 한해가 속절없이 간다는 안타까움에 해돋이라도 보러가야 할 것 같다. 일년 내내 끊임없이 바깥을 동경하고 때로는 떠나보지만 봄의 설렘이나 가을의 외로움, 겨울의 상실감은 항상 반복된다.

늘 2% 부족한 것 같은 이 느낌은 결국은 우리 마음속의 불안감, 나약함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불안함을 만들어내는 것은 만족과 충만함으로 가득찬 '완벽한 삶'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은연중에 '완전한 삶'의 시나리오대로 가고 있나 점검해보게 되고 거기서 멀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들뜨게되고, 울적해지고, 뭔가 해야할 것 같은 충동을 느낀다.

지난 여름 '내 머리 속에 입력된 완벽한 방학 생활'과는 동떨어진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는 늘상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고 그때마다 바깥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그러다가 노자의 도덕경 한구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회오리 바람은 아침나절 동안 계속 불지 못하고 소나기는 종일 내리지 못한다…. 천지도 오래가지 못하는데 하물며 사람에게서이랴…". 결국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불안과 죄책감은 일시적인 것이고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제풀에 없어진다는 것이다.

가을의 고독을 부정하자는 것도 아니고 어디로 떠나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외로움을 느끼고 무언가에 의존하려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내 모습이니 존중해주자. 다만 철철이 나를 흔드는 여러 감정은 결국 내가 나를 볶아서 생겨난 것이란 걸 알고있으면 좀 더 의연하게 가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계명대 교수·광고 홍보학 양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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