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애인 기능경기 금 휩쓴 김태곤씨

전국 장애인 기능경기대회 등 올해 열린 각종 장애인대회 금메달을 휩쓴 김태곤(31·대구 월성동)씨는 11년 전만해도 수영선수였다.키 180㎝에 몸무게 70kg의 훤칠한 체구. 당시 김씨는 고향마을에서 가장 건장한 젊은이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휠체어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조차 없다. 수영은 커녕 걸어다니기도 힘든 몸이 된 것이다."고3 때인 1991년 여름 고향마을 부근의 경남 함양 용추폭포에 놀러 갔습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때가 있다지 않습니까? 수영선수인 제가 결국 물에서 사고를 당했습니다.

다이빙을 하다 목이 부러졌습니다. 전날 비가 와서 물이 꽤 깊은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수심이 얕았던 거죠. 바닥에 부딪친 것 같았는데 척수신경이 상해 그때 이후 제 하반신은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장애! 교과서에서나 보고 듣던 얘기였다. 아니면 TV의 단골메뉴였던가? 김씨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장애를 인정하는데 꼬박 5년이 걸렸다고 그는 말했다. 2년 동안의 병원 신세, 그리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3년간 재활치료에 매달렸다.1초의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힘차게 박찼던 다리. 고된 수영훈련에도 피로를 모르던 김씨의 다리는 5년간의 노력에도 끝내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장애를 인정하지 않던 5년간 저는 잠을 자면서는 걸어다니는 꿈만 꿨습니다. 수영하는 꿈도 꿨지요. 그런데 어느날 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제 모습이 꿈에 나타났습니다. 당시엔 악몽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그날 밤 이후 저는 제 앞에 닥친 '장애'라는 두 글자를 인정하게 됐습니다".

장애인들은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할지를 절박하게 고민한다. 비장애인들은 높은 강도의 육체 노동이라도 가능하지만 비장애인들은그런 일이 어렵고 일자리도 찾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씨도 마찬가지였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닌데 젊은 사람이 마냥 놀 수도 없었죠. 경기도 일산, 전남 담양 등 전국의 장애인 직업전문학교를 찾아 다녔습니다".90년대 중반 IT붐이 일었다. 컴퓨터… 장애인에게 이보다 더 적합한 직종이 있을까? 직업전문학교에서 컴퓨터를 집중적으로 익혔다.

2000년 3월. 창업을 해보자는 의뢰가 들어 와 대구로 왔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컴퓨터를 이용해 인쇄물을 만드는 회사를 다른 4명의 장애인들과함께 만들었다. 하지만 실패. 일감이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해 갖는 불신은 대단합니다. 결과는 보지 않고 선입관부터 내세워 장애인들은 실력이 없다고 예단합니다".지난 4월 대구 달성군 장애인 작업장이 확장 개소되면서 김씨는 이곳으로 왔다.

홈페이지 개설 의뢰가 들어오는 곳이 있으면 김씨가 맡아 만들어 준다. 그 이후 올해는 기쁜 일도 많았다. 지난달 전국 장애인 기능경기대회 웹마스터 부문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번달 열린 전국 장애인 근로자문화제 영상 부문에서도 수상했다.

여러 대회에서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자 요즘엔 일감이 조금씩 들어온다. 이달 개소 예정인 대구 달구벌종합복지관의 홈페이지 제작 의뢰도 최근 받았다."일하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국가가 제대로 된 장애인 정책을 만들려면 일자리 대책을 세워줘야 합니다. 보조금 몇 푼 주고 만족하라고 해서는 장애인들이 밑바닥 인생을 벗어나기 힘듭니다".

김씨는 우선 장애인들을 위한 각종 기능경기대회를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한다고 했다. 장애인들이 목표를 설정하고 달려갈 수 있도록 많은 동기부여 장치를 만들어놔야 한다는 것.

"아직 미혼이지만 결혼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 가구의 가장으로서 적정한 수입을 얻으며 자활하는 것이목표이지만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장애인 최고의 기술자가 됐으니 세계 대회를 목표로 해야죠".

사고 이후 제2의 인생에 이젠 익숙해졌다는 김씨. 하지만 내가 만일 안 다쳤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여전히 한다고 했다."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다짐합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 한번 잘 살아보자고요". 김씨는 내년 세계 장애인 기능경기대회 우승을 목표로 부지런히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다. 053)615-0090(달성군 장애인작업장).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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