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수확의 기쁨에 들떠 있어야할 농촌에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긴 장마와 태풍이 물러난지 오래인 지금 들판에는 곡식들이 익어 황금색으로 물들여지고 있지만 들판을 바라보는 농민들은 즐겁기는커녕 영농자금 상환 등에 따른 걱정으로 시꺼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개화기인 지난 8월 예년에 없던 보름간의 긴 장마로 제대로 수정이 되지 않아 알이 꽉 차 있어야할 벼이삭이 빈쭉정이만 남은 것이 많다는 것이다.지난 10일 콤바인으로 벼수확에 나선 이문영(63·영순면 율곡리)씨는 "특히 침수피해 등으로 지난해에 비하면 수확량이 절반밖에 안 된다"며 한숨을 지었다.
6천여평 논농사를 짓고 있는 이씨는 지난해 40㎏들이 400가마니를 수확했지만 올해는 200가마니 가량을 수확하는데 그쳤다는 것이다.연초에 단기영농자금으로 150만원을 대출받은 것이 모자라 200만원의 일반대출까지 받았는데 수량 감소에다 수매량도 63가마니만 배정돼 대출금 상환이 걱정이란다.
이씨는 "아직 미혼인 자녀가 있어 걱정이지만 내년엔 식량용으로만 농사를 짓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며 한숨지었다. 이씨보다 영농규모가 크게 논농사 1만4천평과 밭농사 2천평을 지으면서 콤바인 등 웬만한 농기계는 모두 보유하고 있는 송동섭(49·영순면)씨.
그도 농기계 구입자금으로 빌린 대출금에다 해마다 빌려쓰는 농자금까지, 고충은 그만큼 크다는데 "3~4년이면 수명을 다하는 농기계를 새로 장만하자면 5~7년간 상환하는 농협대출금을 다 갚지도 못한 상태에서 또다시 빚을 얻어 기계를 장만해야 한다"는 푸념이다.
연간 수입은 5천만원 정도지만 영농빚 8천여만원에 대한 연차적인 상환에다 생산비를 빼고나면 순수익은 1천여만원 안팎이 고작이어서 3명의자녀 교육비와 생활비를 충족하자면 또다시 빚을 내야하는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송씨는 "몇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런 어려움을 덜기위해 잎담배 재배 등 다른 농사까지 지으면서 무던히 노력을 해보지만 좀처럼 벗어날 수 가 없다"며 "자녀들이 교육을 마칠때까지는 노력을 배가해야 할 입장"이라고 했다.
벼농사에 의존하는 농가들은 "수매가격 동결과 수매량을 줄여나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최소한 현 상태라도 유지하도록 해달라"는 입장이다.정부수매가가 일반판매가를 웃돌기 때문에 수매량 배정때면 이웃간에도 배정량을 많이 받으려는 경쟁때문에 분위기가 험악할 때도 많다는 것이다.
여기에 농촌인구의 고령화로 일손이 태부족, 기존 영농비에다 가파른 상승 곡선을 긋고 있는 인건비, 해마다 치솟는 공공요금·학자금 등이 큰 부담이란다. "농사란 농민의 성실함 40%에 기후조건 60%가 충족되어야 풍년을 약속한다"는 농민들은 "올해처럼 잦은비와 태풍 등 최악의 기상조건에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음은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는 생활습성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우루과이라운드니 뭐니 해서 농민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계약과 용어들을 내세워 궁지로 내몰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는 농정시책을 세워 농민 입에서 농사 포기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영농빚에 찌들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만 해달라"는 주문이다.
문경·윤상호기자 youns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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