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문화예술사에서 중세(中世)란 문자 그대로 고대와 근대 사이의 기독교, 신 중심의 시기를 가르킨다. 중세 초기와 중기의음악은 미사에서 시편 등을 노래 부르는 것에서부터 그레고리오 성가에 이르기까지 라틴어가사로 된 매우 엄격한 양식의 교회음악이었다.
그러나 후기 12세기 중엽에 접어들면서 문화의 중심이 수도원에서 궁정으로, 문화 담당자는 수도사에서 귀족이나 기사 중심으로 옮겨가게 되었다.성모 마리아에 대한 절대적 사랑이 그 전형이었던 '민네장'은 귀부인을 향한 숭고한 사랑을 노래한다. 서민들의 언어인 독일어로 된 이 사랑가의 가사를 짓고 피델이라는 현악기로 직접 연주노래한 음유시인은 궁정기사들이었다. 아마도 타악기는 너무 시끄러워, 관악기는 입을차지하여서 가사 전달이 어려웠을 것이다.
중세 말기에는 기사계급의 몰락과 함께 '민네장'도 남녀간의 사랑의 노래로 세속화되었다.'카르미나 부라나'는 13세기에 신학에 정통한 젊은 성직자들에 의한 방랑시인의 노래이다. 성직자 양산(量産)으로 말미암아 성직을 맡지 못한 떠돌이 수도사들은 성경을 주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술, 놀이를 찬양하는 세속적 요소를 라틴어로 노래불렀다.
약 320편의 가사로 된 '카르미나부라나'는 1803년 독일 남부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그 필사본이 발견되어 '수도원에서 발견된 노래'라는 뜻으로 명명되었다. 그 내용은 세속적 행복과현세의 즐거움, 사회와 교회의 폐해를 노래한 것이다. 이 가사를 바탕으로 칼 오르프가 동명의 곡명으로 작곡하였다(1937년).
이처럼 중세의 문화예술은 결코 신 중심만은 아니었다. 독일 중세문화는 오히려 기독교정신에 게르만전통, 고대 그리스·로마요소, 궁정기사정신의 융합이라 할 수 있다. 인간적(세속적) 요소를 내포한 채 매우 다양하게 꽃 핀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었다. '암흑기'는 근대 르네상스 지식인들과 계몽주의자들에의해 붙여진 일방적 판단이었을 뿐이다.
계명대 교수·오르가니스트 권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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