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야인시대' 열풍

주먹질.회칼질.납치.집단폭행…. 요즘 TV 드라마는 어느 채널을 돌려도 흉기를 휘두르거나 피가 튀는 장면이 다반사다. 등장인물이조폭이라 저질스런 욕설이나 폭행도 하나 같이 의리나 남자다움으로 포장되고 미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으로 가공된 깡패의 이미지에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열광하는 도착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폭력이 문화적 지형을 획일화하는 느낌마저 없지 않다.게다가 낭만적인 반항아의 이미지까지 덤으로 주어지고 있어 결코 제대로 된 방향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주먹패들 사이의 싸움이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요즘 정치판이나 사회 분위기에신물을 느껴 차라리 주먹 세계의 화끈하면서 사나이다운 싸움의 철학과 조직의 논리에 대리만족을 하려는 건 아닐는지…. 그들은비록 주먹을 쓰지만 명예를 중시하고, 의리와 명분을 소중히 여기며, 부도덕한 강자를 강력하게 응징하는 매력을 뿜고 있지 않는가.

▲일제 강점기 서울 종로의 자존심을 지킨 김두한(金斗漢)의 일대기를 그린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열풍이 뜨겁다. 지난 7월 29일 첫 방영한 이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최근 시청률 47.5%를 기록했다. 김두한(안재모)이 구마적(이원종)과 한판 대결을 벌여 종로의 '대부'가 되는 극적 김장감을 연출했던 어제(화요일)밤 시청률은 50%를 넘어섰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 어제는 대부분의직장인들이 서둘러 귀가하는 바람에 상가.식당가.유흥가들이 한산할 정도였다 한다.

▲매주 월.화요일 밤을 기다리는 층은 중.장년 남성은 물론 주부.대학생.청소년.초등생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는 모양이다.이런 추세라면 7년 전 '모래시계'와 1997년 사상 최고의 시청률(65.8%)을 기록했던 '첫사랑'을 능가할는지도 모른다. 김두한의 일본말 발음인 '긴또깡'을 모르는 초등생이 없을 정도이고, 인터넷 팬클럽이 생겨 난리라 하지 않는가. 게다가 충남 홍성과 보령의 그와 부친 김좌진 장군의 생가터, 부천의 야외 오픈 세트장은 이미 관광명소가 됐다 한다.

▲그렇다면 영화나 소설, TV 등으로 재탕.삼탕된 김두한의 주먹 이야기가 이 시점에서 왜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키며 신드롬을 낳고 있는 걸까. 독립군 총사령관의 아들로 태어나 주먹패로 일제시대를 살았고, 해방 후엔 좌우익과 민주.반민주의 극한 대립의 한복판에서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그의 풍운아적 매력과 어려웠지만 순박하고 정이 넘치던 시절의 향수 때문일까. 아마 그보다는 자존심과 규칙을 지키며 사는 주먹 세계만도 못한 요즘 정치판의 음모와 배신, 비리와 부도덕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 아닐까.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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